“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사랑!’ 모두를 설레게 하는 단어이지요. 누군가 한 번은 가슴 설레는 사랑을 경험했을 것이고, 경험하고 있으며, 경험하겠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성숙해지면서 사랑의 모양도 사랑의 성격도 조금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바라는 모양의 사랑이 아닐 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분명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이신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한일서 4:7)인데 말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사랑’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에게만, 우리에게만 주신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려견’처럼 ‘주종’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바른 사랑을 알고 바로 행하길 기다리십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해와 구름이 내기를 합니다. 누가 먼저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가? 이에 구름이 힘껏 바람을 불어서 옷을 강제로 벗기려고 했지만, 나그네는 바람이 세게 불면 불수록 옷을 더 꼭 끼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조금씩 따뜻한 빛을 비추자, 따뜻한 빛에 나그네의 몸이 따듯해졌고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스스로 겉옷을 벗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참고, 참고 또 참고 기다리십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7) 그런데 여기서 먼저 “모든 것을 참으며”에서 ‘참는다’의 원뜻은 ‘덮다’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교리적인 이론이 아니라 자기 경험에서 나온 ‘간증’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몇 번 부인했습니까?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욕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했고, 심지어 세 번째 부인할 때는 신문 받고 계시던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죽어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하고 있던 그 순간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그때 닭이 세 번 울었습니다. 그 소리에 울고 불고 오열하며 통곡했습니다.
이 자책감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뛰어가서나 빈 무덤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지만, 염치를 알았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전에 자신이 하던 ‘어부’로 돌아왔습니다. ‘분모와 분자’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직접 찾아오시어 그가 세 번 부인했던 것처럼, 세 번이나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베드로의 허물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야! 너는 여전히 내 제자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주는 사랑이며, 덮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도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것 같습니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UN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갑자기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현재의 휴전선으로 후퇴하던 1.4 후퇴 때 일입니다.
미군 부대가 시골 마을의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다리 밑에서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쟁에서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았던 군인들은 또 부모 잃은 어린아이가 울고 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병사가 다리 밑에 가보자 눈 속에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옷은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옷을 덮어주고 꼭 끌어안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그 옆에 그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배운 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며 주는 사랑이며, 덮는 사랑이며, 계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통곡했으나 침묵하셨고, 예수님도 본인 오신 목적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측량할 수 없는 참사랑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잊겠습니까? 이러한 참사랑을 우리도 전하며 행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