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로새서 3:20)
‘오복’(五福)이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서삼경 중 ‘서경’에 있는 ‘수’(壽), ‘부’(富)와 정신적 건강인 ‘강녕’(康寧) 그리고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유호덕’(攸好德)과 천수를 다하는 ‘고종명’(考終命)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복’(五福)에 더해 여섯 번째 ‘육복’(六福)은 무엇일까요? 설마 어느 일간지에서 소개된 ‘부모는 재산만 남겨놓고 빨리 죽으라’는 ‘조실부모’는 아니겠지요.
어느 어르신 얘기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자식이 빨리 자리를 잡으라는 의미에서 모두 다 내어준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깥 활동을 자주 못 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도 친한, 이민 간 친구가 잠시 귀국을 했기에 만나려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날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범아! 혹시 10만 원만 빌릴 수 있겠니?’ ‘아버지, 손자가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가요. 애들에게 쓸 돈도 모자라는 것 아시잖아요’ 하고 출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려 외출하게 해 드렸습니다.
아들도 마음 한구석은 불편을 지울 수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서 하는 일마다 꼬여 언짢은 마음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그날따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밖에서 흙장난 질을 했는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거실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에 아내에게 ‘여보, 애가 이렇게 더러운데 왜 아직 씻기지 않았어?’ 그러자 아내는 태연하게 ‘아들 애지중지 키워봤자, 어차피 나중에 제 자식 돌보느라 우리한텐 신경도 안 쓸 거예요. 그런 걸 보고 배우며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이젠 애한테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살려고요’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부모님께 하는 모습을 자식들은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오늘 첫 문장 골로새서 본문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엔 퀴리오’(ἐν Κυρίῳ) “주안에서”입니다.
‘엔’(ἐν)을 ‘~의 면전에서’처럼, ‘코람 데오’(Coram Deo) “주님의 얼굴 앞에서 기쁨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누가복음 14:26)
그리고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4~36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가정의 화목을 깨드리고 서로 원수로 만드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이 구절을 자주 이용합니다.
C.S.루이스는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은 이 구절을 읽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루이스의 이 말은 ‘말씀’을 읽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한 사람은 이 구절을 이용하여 자신의 잘못된 감정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경고의 뜻입니다.
그런데 앞의 누가복음 14장 26절 말씀에서 “미워하다”의 헬라어 ‘미세이’(μισεῖ)는 ‘미워하다’라는 의미보다 순차적 사랑,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장 9절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에서 “미워하다” ‘에메세사스’(ἐμίσησας)는 ‘철저한 미움’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를 염려하셨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효자입니다. 이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면서도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의 중요성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십계명 다섯 번째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12)고 할 때, 동사의 개념으로 히브리어 ‘카베드’(כַּבֵּ֥ד)가 쓰였는데 이의 의미는 ‘무겁다’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켜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2~3)입니다.
이는 부모님의 공경(恭敬)이 ‘경외’(敬畏)처럼, 두려움을 가지고 공경하라는 말씀이며, “부모 경외” 히브리어 ‘야레’(יָרֵא)나 “부모공경” 헬라어 ‘티마오’(τιμάω) 두 동사 역시 완료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으로 쓰므로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부모공경과 주일 안식을 지키는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주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부모님께 안부를 여쭈고 필요한 것을 먼저 준비해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