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고난과 역경 뒤에 감춰진 ‘영광’
[변요한목사 시론] 고난과 역경 뒤에 감춰진 ‘영광’
  • 임지영 기자
  • 승인 2024.07.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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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누가복음 18:7)

미국의 소설가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은 ‘애틀란타 저널’이라는 신문사를 다니고 있던 스물여섯의 나이에 다리를 크게 다쳐 회사를 그만두고 병상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긴 세월 끝에 아주 특별한 소설 하나를 탈고(脫稿)했습니다.

그 후 그는 원고 뭉치를 들고 이곳저곳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무명작가인 그의 소설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데는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러갔고, 그 사이 그의 원고는 닳아서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출판사 사장인 ‘레이슨’이 기차로 출장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역으로 달려가서 그에게 “제발 이 원고를 읽어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이에 마지못해 원고를 받아든 레이슨은 귀찮은 듯 원고를 가방에 쑤셔 넣었습니다. 이는 안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레이슨은 전보를 받았습니다. “제발 제 원고를 읽어주십시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레이슨은 그 원고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목적지가 지나치는 줄도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습니다. 그것도 5부작인 대작을 말입니다.

레이슨은 마침내 자신의 맥밀란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출판했고, 이 소설은 발행한 지 1년도 안 되어 150만부가 팔려나갔습니다. 그 후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입니다.

이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11)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미첼과 그 책을 읽고 무명 작자의 책을 출판한 출판사 사장 레이슨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머리글의 배경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되”(마태복음 18:2~3)입니다. “원한을 풀어달라고” “번거롭게(κόπον)하고, 괴롭게(ὑπωπιάζῃ)”(마태복음 18:5)함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것이 옳은가요?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가요?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37:8),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시편 79:12),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시편 6:10)처럼 성경에서조차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을까요? 이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로마서 12:17)라는 말씀과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마태복음 23:15)라며 ‘거룩한 분노’를 내셨던 예수님과 다르게, ‘치열한 삶’의 과정에서 ‘억울하고 원통함’에 내가 직접 그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호소함으로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므로 같은 것입니다.

머리글에서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면 우리가 ‘원한’이라고 여기는 사건의 본질, 또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억울한 일이나 속상한 일들로 인해 벌어지는 어려움은 그런 일 자체라기보다는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을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처럼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고 변화되었고, 이를 통해 그분이 비판과 정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심으로 그분의 사랑과 용서로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정신적인 고통이 해결되면 됩니다.

예전 일을 돌아보면 그때 그것이 ‘사소’한 것이 되고 지금 받는 복과 앞으로 누리게 될 크고 놀라운 복을 세다 보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게 되고 영광만 올려드리게 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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