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사도행전 17:16)
그리스 신화에 보면 아덴(아테네) 사람들은 신을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기술과 지혜를 동원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조각하여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아덴에서는 사람보다 신을 만나기 쉬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아덴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바울이 아덴을 방문하기 500년 전에 세워졌습니다.
저도 목회하기 전 수학적 정확성과 환상적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던 시절에 건축가와 미술가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는 예술품들, 세상적 입장에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사람들이 만든 우상인 신상임을 성경 말씀 가운데서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머리글에서 바울은 수많은 신상에 압도당한 것이 아니라 격분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뛰어난 지혜와 기술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우상을 만들고 거짓을 숭배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17:17)
사도행전 17장 18절에서는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로 기록돼 있습니다.
철학은 세상의 근본원리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고대 철학자라고 하면 생각나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바울이 아덴을 방문하기 400년 전에 활동했던 철학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철학의 본거지에서 그 후예들과 쟁론을 벌인 것입니다.
특히 18절에 등장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이은 헬라(그리스) 철학의 양대산맥이었습니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da Urbino)가 그린 ‘아테네 학당’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사람들의 손끝을 주의 깊게 보면 나이가 든 사람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있고, 좀 젊어 보이는 사람은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는 젊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는 세상의 근원이 이 세상, 즉 물질과 경험의 세계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 사상을 이은 사람들이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본질이 물질이기에 내세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쾌락을 최고의 선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손끝을 하늘로 향한 사람은 플라톤으로, 그 사상을 이은 사람들은 스토아학파입니다. 그들은 물질의 세계를 초월하는 이데아의 세계 ‘로고스’가 우주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금욕적이었고,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멸시하고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 철학자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말쟁이라고 했으며, 쓰레기 같은 사상을 가지고 밥벌이하는 저급한 철학자라고 폄훼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에게 변론할 기회는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덴에 있는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에 대한 자신감으로 열린 자세를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21) 그래서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하는 바울에게도 중요한 쟁점을 토론하고 공회와 법정의 기능을 했던 아레오바고에서 말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아레오바고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아레오바고 회의는 아덴에서 가장 역사 깊고 또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은 회의로 초기에는 소송을 다루는 ‘법원’ 역할을 했었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사도행전 17:24)라고 말한 뒤, 너희들이 주장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그저 물질에 불과하고 이데아의 산물도 아니며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지금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29절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사도행전 17:30),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사도행전 17:32)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바울이 전하는 말을 거부했습니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사도행전 17:34) 이는 바울이 그토록 자신 있게 생각했던 마음과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습니다.
그리스 아덴의 철학자들과 바울의 복음 전파 결과를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지혜로 무장함은 디딤돌이나, 지혜만 앞세우면 걸림돌이 된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