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나라’의 이행각서 재판인가?…사법부 웃음거리
‘코미디 나라’의 이행각서 재판인가?…사법부 웃음거리
  • 채민석 전문기자
  • 승인 2021.03.1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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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백 판사, ‘무죄 추정의 원칙’ ‘증거주의 재판 원칙’ 무시
피의자 A씨, ‘이행각서 위조’ 유죄 판결 유도하며 거짓 진술
고철용 비리척결본부장 ”TV 막장 드라마보다 웃기는 재판”
12일 최성 전 고양시장의 보좌진 A씨의 고양시장 부정선거 이행각서 위조 심리 제4차 공판이 진행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12일 최성 전 고양시장의 보좌진 A씨의 고양시장 부정선거 이행각서 위조 심리 제4차 공판이 진행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베이비타임즈=채민석 전문기자] 형사고발된 피고인은 ‘자발적·적극적으로’ 유죄를 주장하고, 검사는 피고인의 죄를 입증한답시고 명확하지 않은 ‘엉터리’ 자료를 증거물로 제출하고, 일부러 죄를 뒤집어쓰고 유죄 판결을 받으려고 거짓 자백하는 피고인의 장단에 맞춰 춤추는 판사.

얼핏 보면 세상을 비꼬는 연극이나 막장 TV 드라마에나 등장하는 ‘국민을 웃기기 위한 코미디’ 소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2일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시장 경선 과정에서 최성 전 고양시장 측과 이재준 당시 후보의 이행각서 지문날인 사문서위조 등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재판에서 실제로 발생한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6단독 권기백 판사는 12일 오후 진행된 최성 전 고양시장의 보좌진 A씨의 고양시장 부정선거 이행각서 위조 심리 제4차 공판에서 유죄를 주장하는 A씨를 위해 이행각서 지문이 A씨의 것이라는 감정평가 결과를 증거로 채택했다.

권기백 판사는 이날 열린 공판에서 “이행각서 지문감정 결과 국가수사본부에서 이재준 이름 옆 지문은 피고인 A씨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최성 전 보좌관) B씨의 이름 옆 지문은 A씨의 오른손 중지하고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측은 이행각서 파일 해상도가 낮아 감정이 불가하다고 회신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권 판사는 지난 2월 3일 진행된 제3차 공판에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유죄를 받고 싶어 하는 피고인 A씨를 향해 스스로 유죄의 증거를 제출하라고 압박한 바 있다.

또 권 판사는 A씨가 컴퓨터에서 위조한 이행각서를 출력해 지문을 날인 할 때 빨간색 인주로 날인 했다고 진술하자 즉시 A씨의 휴대폰에서 확보한 이행각서 원본을 모니터 화면으로 띄우고 이행각서 지문날인이 빨간색 인주가 아닌 검은색 인주를 사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피고인 A씨의 거짓말을 입증했다.

권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행각서를 위조했다는 피고인의 자백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피고인이 거짓말을 하고 최성과 이재준 사이에 모략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후 권 판사는 A씨의 지문 감식과 이행각서의 두 당사자인 최성 전 고양시장 측 대리인 이00씨(B씨)와 이재준 고양시장의 지문만 확인하면 위조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그 같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검찰을 질타하며 재판장 직권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이행각서의 지문 감식을 촉탁 하는 동의를 검찰과 피고인 측으로부터 받아냈다.

하지만 12일 진행된 제4차 공판에서 권 판사는 국가기관 한 곳에만 지문 감식을 촉탁 하면 논란이 생길 수 있어 두 곳의 국가 감정기관에 지문 감정을 촉탁 했다면서 국과수 외에 추가로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에 지문 감식을 ‘독단적으로’ 촉탁 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피고인 A씨가 무죄가 아니라 유죄를 주장하고 검사는 엉터리 증거로 A씨를 유죄로 몰아가는 듯한 무리한 기소를 하는 모습이 일반인이 봐도 알 정도로 분명한데도, 권 판사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피고에게 불리한 증거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권 판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고 신뢰도가 높은 국과수가 ‘판독 불가’로 판정한 감정 결과에 반하는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의 ‘이행각서 지문은 A씨의 오른손 엄지와 중지가 사용된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증거로 채택했다.

권 판사는 피고인 A씨의 무죄 입증에 도움이 되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대한 증거채택 여부는 피고인 측에 묻지도 않으면서, A씨의 유죄에 결정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국가수사본부 감정 결과를 피고인 측에 “증거로 채택하는 데 동의하는가”를 물었고, 피고인 측은 당연한 듯 ‘판결에 불리한’ 증거의 채택에 동의한다고 ‘화답’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연출됐다.

이행각서를 자신이 위조했다며 유죄를 주장해온 피의자 A씨는 이날 제4차 공판에서 ‘이행각서의 지문은 A씨의 지문’이라고 감정한 국가수사본부의 판정 결과가 증거로 채택되자 ‘유죄 판결’을 걱정하기보다는 거꾸로 즐거운 모습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법정을 나서 방청하던 많은 취재진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피고인은 공판 과정에서 방어권 행사로 거짓말을 해도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는 점을 이용해 온갖 거짓말로 무죄를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A씨의 재판에서 벌어진 것이다.

국가기관 두 곳의 감정 결과만 놓고 보면, 판결 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이행각서의 위조 여부는 아직 판결 전이고, 검찰이 실제 존재한다고 적시한 고양시장 부정선거 이행각서 지문의 양측 당사자인 최성 전 시장의 보좌관 B씨와 이재준 고양시장은 해당 사건에서 아직 피해자가 될 수 없다.

특히 이행각서 날인 지문의 당사자인 최성 전 시장의 보좌관 B씨는 변호사를 통해 3곳의 감정사가 감정한 감정서, 즉 이행각서에 날인된 지문이 사문서 위조로 기소된 피고인 A씨의 지문이 아니라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는 감정서를 지난해 11월 27일 권 판사에게 제출하고 실제 '이행각서' 작성자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권 판사는 12일 열린 4차 공판에서 이재준 고양시장과 최성 전 시장 보좌관 B씨를 피해자라고 호칭하며 A씨에게 피해자 측과 합의 시도가 있었는지를 묻기도 했다.

권 판사가 ‘이행각서’ 작성 등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서 현재 ‘기소중지’ 피의자인 이00(B씨) 전 최성 시장 보좌관과 ‘참고인 중지’ 피의자인 이재준 고양시장을 이행각서 위조 사건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탁월한 재판 기술’을 구사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시장 경선 과정에서 최성 전 고양시장 측과 이재준 당시 후보가 작성했다고 폭로된 이행각서 사본.(사진=비리행정척결운동본부 제공)
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시장 경선 과정에서 최성 전 고양시장 측과 이재준 당시 후보가 작성했다고 폭로된 이행각서 사본.(사진=비리행정척결운동본부 제공)

지난해 지방선거 때부터 최성 전 고양시장 측과 이재준 현 고양시장 측의 공직선거법 위반 수사를 촉구해온 고철용 비리행정척결운동본부장은 제4차 공판에 대해 “TV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재판”이라고 꼬집었다.

고 본부장은 “제3차 공판에서 국과수 촉탁을 결정했으면 국과수 촉탁을 신뢰해야 하는데 이를 신뢰하지 못하고 공판 과정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국가수사본부를 끌어들여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희석시키는 것은 누가 봐도 ‘짜고치는 고스톱’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번 4차 공판에서 권 판사가 A씨의 ‘유죄 판결’ 주문에 매우 충실하게 장단 맞추는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잘 짜여진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고 본부장은 이어 “권 판사가 제2차, 제3차 공판에서 지적했듯이 누가 봐도 이 재판은 진실을 가려내기 아주 쉬운 재판”이라며 “권 판사가 이행각서 당사자인 이00과 이재준 시장을 공판 석에 불러 이행각서 지문이 맞는지 틀리는지 물어보고 지문을 떠서 국과수에 감정 촉탁 하면 쉽게 결론이 난다”고 강조했다.

고 본부장은 또 “검찰이 소재 불명이라던 이00은 변호사까지 선임해 이행각서 지문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재판석에 불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고 이재준 시장도 재판장이 직권으로 명령하면 재판에 참석해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3차 공판에서 지문 감식을 의뢰한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판명 불가로 나왔는데도 검찰기관이 아니라 경찰기관인 국가수사본부의 감정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A씨를 ‘이행각서 위조 유죄’로 희생양 삼아 ‘이행각서’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는 시커먼 음모로 보인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고 본부장은 “국가수사본부를 짜여진 각본대로 느닷없이 끌어들여 국내 최고 권위의 국과수가 판명 불가로 감정한 결과를 A씨의 지문이 맞다고 판정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본부장은 이어 “108만 고양시민들을 조롱하고 사법기관마저 우습게 만들며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고양시장 부정선거 매관매직 세력들을 처벌하기 위해 조만간 이00과 이재준 시장의 이행각서 농단 해결 방법과 처리 절차에 대해 국민들께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A씨에 대한 다음 공판은 4월 28일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앞서 A씨는 지난 2019년 2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이행각서’라는 제목으로 당시 경선에 나선 이재준 시장의 이름과 최성 전 고양시장의 보좌관이었던 B씨의 이름을 넣고 인사권 등 15가지 항목이 포함된 문서를 출력한 뒤 날인해 사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 문서를 출력해 다음날 고양시의 한 간부를 만나 위조된 해당 각서를 보여주고 휴대폰 파일 등으로 전송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A씨는 이행각서를 위조했다고 자백하고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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