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십자가를 지는 신앙과 새 생명
[변요한목사 시론] 십자가를 지는 신앙과 새 생명
  • 임지영 기자
  • 승인 2026.04.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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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베드로가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 주신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보다는, 종려나무를 흔들던 백성들처럼 서로가 크다고 논쟁할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할 것을 미리 말씀한 뒤, 그 후 평소처럼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지만, 인간의 몸을 빌려 오신지라 내일 십자가에 지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땀방울이 핏방울 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6)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간 제자들이 머무는 자리에 내려왔는데, 쿨쿨 자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0~41)

오늘 머리글 말씀처럼 우리가 ‘감정, 욕망, 염려’ 등을 ‘근신’(νήψατε)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야 ‘부활 생명’을 받은 자 답게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은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2~13)

예수님을 찾아오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후로도 상당 기간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니고데모의 경우를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보고 이제는 공개적으로 나섰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요한복음 19:38~39)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리트라’는 약 30kg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향품은 고가품일뿐 아니라 이렇게 많은 양은 왕족에게나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대우한 것이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헌신한 셈입니다.

특히 유대인의 율법 규정상 시신을 만지면 7일간 부정해져서 유월절 행사를 포기해야 함에도, 기꺼이 예수님의 시신을 직접 만지며 ‘염습’(殮襲)을 하였습니다.

이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공개적으로 십자가를 증거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는 신앙’을 실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사들에게 잡히기 전에 자신이 말했던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한복음 7:50~51)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입니다.

독일의 기독교 사상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한 말처럼,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우리 모두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갈 것입니다.

부활 생명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롭게 다시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건강하게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에바다’ 모든 문제는 열리고 풀리고 해결되며 뚫리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아픈 곳에 손 얹은 곳에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깨끗이 다 낳게 하시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힘찬 발걸음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또한, 독수리 날개 쳐 오르듯 비상하는 비전과 달려가도 곤비하지 않으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은 축복 받는 삶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들려지다’ ‘휩소데나이’(ὑψωθῆναι)는 단순히 위로 올려진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 곧 높임을 받는 것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는 분명 로마의 처형 도구였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잘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고, 단지 고개를 들었는지를 보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그 일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다시 새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 영광 올려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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