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열왕기하 13:14)
그리스도인에게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열정에 차이값이 달라집니다.
영국의 소설가인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가 런던을 방문했다가 의기양양하게 돌아오자, 루이스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푸쉬야. 너 어디 갔다가 오니?’ 그러자 그 고양이는 ‘예, 나는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이에 다시 루이스가 물었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니?’ 이에 고양이가 ‘나는 여왕의 의자 밑에 기어다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이에 떠오르는 말씀이 열왕기하 13장 14~19절 말씀 중 오늘 머리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얼마나 효자이고 어른에 대한 공경입니까? 그것도 왕이 신하에게 이렇게 했다는 것은 그가 그를 얼마나 존경했고 의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보호자’를 의미하며, ‘병거와 마병’도 적들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이스라엘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말은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할 때 엘리사가 한 말입니다. 요아스 왕은 북이스라엘 12대 왕으로 그가 존경했던 분은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열왕기하 13장 7절에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전쟁한 후 이스라엘에 군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어서 아람 왕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미리 어디를 공격할지 알려주었기 때문에 모든 군사를 그곳으로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싸워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4절에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열왕기하 13:14)처럼 엘리사가 죽으면 이스라엘은 결정적인 전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에 절박한 심정으로 울고 있는 어린 요아스 왕을 위하여 엘리사가 마지막 선물을 합니다. 엘리사는 왕에게 두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시킵니다.
먼저 활과 화살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의 손에 엘리사의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활을 잡으시오. 그리고 동쪽 창을 열고 쏘시오”(열왕기하 13:15~17) 그리고 활을 쏜 왕에게 엘리사는 그 활 쏘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입니다. 왕이 아람 나라를 쳐서 멸하고 점령할 것입니다”(열왕기하 13:17)라고 예언해 줍니다.
그 후 왕에게 이제 “화살을 잡으시오” 그리고 “그 화살로 땅을 치시오” 하자 요아스 왕은 “화살로 세 번만 치고 멈추었습니다”(열왕기하 13:18) 여기서 왜 “세 번만 치고 멈추었다”고 했을까요? 왕이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치라는 말을 흥분해서 두 번 치다 보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많이 친 것인가요? 아니면 많이 쳐야 하는데 멈춘 것인가요?
만약 요아스 왕이 “아람 나라를 쳐서 멸하고 점령할 것이 진짜예요? 진짜예요?”라고 흥분되었다면 너무나 좋아서 화살을 여러분 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세 번을 치고 멈추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에 열왕기하 13장 19절로 엘리사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라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열왕기하 13:19)
그렇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시며, 왕은 하나님의 도구(the agent)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람을 향하는 동쪽 창을 열고 화살을 쏘라’와 ‘화살의 의미’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즉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므로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칠 것이다’입니다.
그러나 요아스 왕은 믿음도 열정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아스 왕의 치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열왕기하 13:2)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요하스 왕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하나님 대신 여로보암 가문의 오랜 정책인 ‘우상숭배의 길’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요한계시록 3:17~18)고 열정도 믿음도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 우리를 향한, 우리나라를 향한 말씀이 아닌지 묵상이 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