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취직하고 집 생기면 아이 낳고 싶을까?
[취재수첩] 취직하고 집 생기면 아이 낳고 싶을까?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3.0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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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출산 망설이는 이유, 경제적 여건뿐 아냐
돌봄·양육 질적 향상 병행해야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지난 2일,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진행한 후보자 4인의 TV토론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바로 ‘인구절벽 대응 방안’이다. 지켜보면서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이 비중 있게 제기됐다는 기대, 한편으로는 단편적인 해결책만 오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끝까지 지켜본 결과 걱정했던 쪽에 좀 더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네 후보는 모두 일자리와 주거 정책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심상정 후보는 그 와중에 ‘생명을 앞세우는 선거’를 비롯해 식량 위기와 농민 문제, 이주민 문제까지 언급하느라 바빠 보였다. 물론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와 다른 내용을 준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후보들의 대전제는 비슷하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으니 아이도 낳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혼할 수 있는 환경,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일자리 문제와 주거 문제다. 기호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부터 기호 4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까지, 이 전제에서 출발했다. 단지 각자 방법론적인 차이를 보였을 뿐이다.

◆ 결혼·출산하지 않는 이유, 다시 짚어보자

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정말 내 직장이 생기고 내 집이 생기기만 하면, 청년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자 할까?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지표가 나온다. 

만 15세~39세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연구에는 ‘결혼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묻는 항목이 있다. 여기에 남성은 ‘가족에 대한 생계 부담(23%)’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여성은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어서(26.3%)’ ‘전통적 가족 문화나 가족 관계의 부담(24.6%)’을 1, 2순위로 꼽았다. 

연구 결과로만 보면 여성들은 일자리나 ‘내 집’이 생긴다고 해서 자연스레 결혼을 결심하지는 않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여성 중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의 비율(23.9%)은 남성(11%)보다 높게 나타난 상황이다.

결혼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으려는 이유. (자료=여성가족부 제공)
결혼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으려는 이유. (자료=여성가족부 제공)

자녀 출산을 망설이거나 의향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자녀 양육·교육 비용 부담(46.1%)’을 꼽았지만 여성은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31.7%)’ ‘자녀에게 매여 살고 싶지 않아서(15.5%)’등 돌봄 부담의 비중을 우선으로 꼽았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여건이 마련된다고 자연스레 ‘아이를 낳아야지’라며 결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응답도 여성(41.4%)이 남성(22.7%)보다 높다.

앞서 김창순 인구보건복지협회(이하 인구협)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면서 “결혼과 출산, 육아가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화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돌봄·양육, 양적 확대만큼 질적 강화 신경써야

지난 2일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약 3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는 이스라엘의 보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일년에 100만원으로,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국가가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이다. 양육이라는 과제를 개인의 영역에서 공동체 영역으로 더 가져오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학계와 외부 기관에서는 이미 양육의 질적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인구협이 ‘제8차 저출산인식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해당 지적이 나왔다. 한성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학부모들의 주된 관심사는 질적 부분이 가장 크다”면서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인을 학교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질적 수준이 담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 위원은 “정규수업시수를 확대하면 돌봄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 시간”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이후 수업이 연장됐을 때는 그냥 학원을 이용하는 경향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위원은 “시수 확대와 더불어 돌봄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똑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초등학교는 오후 3시에 일률적으로 하교하게 하고, 7시까지 방과후교실을 열어주자”고 한 부분도 이 질적인 문제가 담보돼야 한다. 

◆ 남성 육아휴직, 눈치 보기도 하지만...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육아휴직 사용률이 현저히 낮다면서 아빠들도 쓸 수 있게 할당제를 하든지,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자동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인구협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워킹대디’의 육아휴직 경험자는 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이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로 ‘남성근로자는 사용하지 않는 직장분위기(47.5%)’에 이어 ‘수입 감소(40.7%)’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고 해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 (자료=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 (자료=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

인구협이 지난해 진행한 ‘제9차 저출산인식조사’ 발표 토론회에서는 워킹대디로 참여한 윤민재씨가 “육아수당이 현저하게 적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윤 씨는 “통상 임금이 3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3개월 동안은 임금 100%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4개월 차부터는 대략 11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며 “직장인 남성들이 선뜻 육아휴직을 결심하기에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욱 서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소득 감소를 꼽았다. 김 교수는 “임금이 높은 분들은 육아휴직을 많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사실 아내들이 반대하기도 한다. 아빠들이 벌어오는 소득이 크게 줄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인구절벽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선 토론의 한 꼭지로 다뤄진 점은 의미가 있으나, 그 내용은 여전히 아쉽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저출산의 원인은 여성문제가 아니라 불평등”이라고 지적한 심상정 후보의 문장이 그나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본다. 

대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어떤 정부가 꾸려지더라도 지금보다 더 다양한 관점으로 인구절벽 문제를 다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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