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 뒤흔드는 '빅테크'..."상생이냐 경쟁이냐"
금융업 뒤흔드는 '빅테크'..."상생이냐 경쟁이냐"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1.03.0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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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지난달 24일 네이버파이낸셜과 ‘소상공인 포용적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맺었다. 권광석(오른쪽)우리은행장과 최인혁(왼쪽)네이버파이낸셜 대표이사 (사진=우리은행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최근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핀테크 경쟁이다. 특히 아마존, 구글, 카카오, 네이버 등 은행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많은 고객을 확보한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금융업으로 진출하면서 업계에서는 '은행의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빅테크 기업들은 핵심 사업을 보완하고 강화하기 위해 먼저 지급결제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 후 점차 다른 금융 분야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식이다. 심지어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와 텐센트(Tencent)는 자국의 신용평가 인프라가 미흡한 점을 노려 신용평가 서비스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 금융권을 흔들고 있는 빅테크 기업은 단연 네이버와 카카오다. 검색 엔진에서 시작해 쇼핑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네이버와 '국민 메신저'로 출발해 어마어마한 고객 수를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는 점차 금융업에 깊이 발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페이의 지난해 거래액은 25조원대, 카카오페이의 지난해 거래액은 67조원대였다. 기존 금융권을 충분히 위협할 만한 규모다.

금융사들은 빅테크와의 협업에 나서고 있다. 생존을 위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빅테크 기업을 적으로 두고 경쟁하기보다 협력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은행은 네이버페이를 운영하는 네이버파이낸셜과 지난달 '소상공인 금융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금융과 플랫폼 기술을 결합해 '디지털 융복합 상품'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네이버파이낸셜은 추가적인 인적·물적 투자 없이 은행 관련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우리은행은 네이버와 손을 잡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급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협약을 체결하면서 "은행도 디지털화의 흐름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필수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한성숙(왼쪽) 네이버 대표와 정태영(오른쪽)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현대카드·현대캐피탈 뉴스룸 제공)

2금융권도 빅테크와의 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카드사들이 빅테크와 손을 잡고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경쟁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PLCC는 기업과 카드사가 카드 설계부터 운영·마케팅 등 모든 과정을 함께 추진하고 비용과 수익도 함께 나누는 상품이다.

현대카드는 지난달 네이버와 협업해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전용 신용카드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은 네이버 클라우드·웹툰·음악·영화 등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네이버 쇼핑 결제금액의 최대 5%를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적립해주는 유료 회원제 서비스다. 양사는 이 서비스에 특화한 혜택으로 고객을 유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카드 역시 카카오페이와 협력해 오는 5월 PLCC를 출시할 계획이다. 양사는 '카카오페이 포인트'에 특화된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카드 고객이 PLCC를 통해 카카오페이 결제서비스와 선물하기·택시·멜론·웹툰 등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를 이용하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식이다. 삼성카드와 카카오페이는 앞선 1월에 양사의 앱 결제를 연동시키는 등의 협업을 이뤄내기도 했다.

한화생명도 카카오페이와 손을 잡았다. 한화생명은 카카오페이와 업무협약을 맺고 지난 5일부터 카카오톡을 통해 자사 고객들에게 신용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들은 카카오톡 앱을 통해 '한화생명 Ez-Family 신용대출'과 '한화생명 VIP 신용대출' 두 가지 상품을 신청할 수 있다. 고객은 기존에 활용하던 ARS 및 인터넷, 모바일 앱과 더불어 새로운 선택지를 얻었고, 한화생명은 고객 편의성을 강화한 셈이다. 카카오페이 입장에서는 대출 서비스를 하나 더 포트폴리오에 넣게 됐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금융산업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 기업은 기존 금융사나 핀테크 기업들과는 달리 두터운 고객기반과 상당한 자본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KCMI)은 "이러한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기존 금융회사와 빅테크 기업 간의 경쟁을 심화하며 기존 금융회사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권 내에서도 빅테크 기업에의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KB금융지주는 인공지능(AI) 금융 스피커를 개발하기 위해 2년 가까이 이어온 네이버와의 협업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KB금융은 네이버나 카카오, 토스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사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전체가 빅테크와의 협업에 발 벗고 나서는 가운데, 독자 노선을 택한 유일한 대형 은행이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KB금융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 플랫폼으로 승부를 보려는 윤종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계열사 주요 앱을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자체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KB금융은 자체 사설 인증서인 'KB모바일인증서'를 개발해 고객들이 계열사 앱에 편하게 로그인하게 만들기도 했다.

KB금융의 '독자 노선'처럼 빅테크 기업과 손을 잡고 싶지 않은 금융사는 자체적인 디지털 혁신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KIF)은 '2021년 은행산업 전망과 과제'에서 "디지털 혁신은 단순히 '채널의 디지털화'로 이뤄지는 형태가 아닌 상품 및 서비스의 차별화와 내부조직, 인사, 기업문화 등의 전사적 혁신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지난 2019년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모바일 뱅킹 앱 '핀(Finn)'을 출시 1년 만에 폐쇄한 바 있다. 기존 상품과 서비스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거나 목표 고객에 대한 이해, 기업문화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디지털 혁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빅테크 기업의 출현과 금융권 지각변동을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출현'이라는 순기능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금융업의 본질적 업무를 위탁하지 못하게 하는 금융회사 업무위탁 규제를 합리화하고, 금융 실명 확인의 제3자 위탁 대상도 확대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빅테크 기업이 기존 금융사와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빅테크 기업이 규제 공백을 남용해 규제 차익을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도록 동일행위·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기존 금융사와 같은 수준으로 규제를 적용하고 감독할 필요도 있다. 빅테크 기업이 시장 독과점을 일으키거나, 기존 금융회사에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해 서비스 경쟁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기존 업계와 빅테크 기업 간의 갈등으로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업계 전반의 판도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예상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빅테크 기업이 유통이나 물류 같은 다른 산업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빅테크 기업이 금융권에 미칠 영향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향후 금융사와 빅테크 기업, 그리고 금융당국의 삼각 구도가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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