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차미향 칼럼] "보건교사도 때로는 아프다"
[보건교사 차미향 칼럼] "보건교사도 때로는 아프다"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2.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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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향 전국보건교사회장
차미향 전국보건교사회장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가 발생했다. 그 후 감염자는 급속도로 증가,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

그 이듬해인 2020년 1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관련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이로써 중국과 이웃한 우리나라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매스컴에는 날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브리핑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의 국내 발생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을 예의주시하며 문제 해결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며 각 부처 간 협력 방안도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의료인으로서 아낌없는 협조와 응원을 보낸다. 그러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학교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보건교사로서는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지 못하다.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 코로나19 카오스, 보건교사는 아파도 아프지 못한다

얼마 전 갑자기 목이 아프고 온 몸이 쑤시며 힘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감기에 걸리려나? 잘 쉬면서 조심해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점점 더 아프고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평상시같으면 그냥 병원 진찰을 받고 말았을 터인데, 문득 코로나19가 떠올라 덜컥 겁이나고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내가 아프기 14일 전에 누구를 만났었지? 어디에 갔었지? 내가 아프게 되면 학교는 어떡하지?’ 등 아픈 내 몸보다 다른 일들을 먼저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인이자 교사로서 학생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들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같은 시국에 보건교사는 아파도 아프지 못한다.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보건교사도 아파요? 보건선생님이 아프면 어떡해요?”라는 걱정 섞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때문에 아파도 학교에 나와서 견뎌내곤 한다.

감염병 시기 뿐만이 아니다. 평상시에도 언제 어떠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보건교사는 늘 긴장상태다.

그러나 보건교사도 사람이다. 보건교사도 때로는 아프다.

◇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보건교사의 일과

모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학생이 아픈 곳이 생겨 보건실을 들렀지만 흡족한 보호와 처치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보건교사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아플 때는 사소한 일도 더 서럽게 느껴지지 않나. 학생도 그랬던 것 같다.

그 후 학생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이 학교 보건실로 항의 방문을 오셨다. 자녀에게 해당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보건실을 찾았던 부모님은 보건교사와 제대로 된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다시 돌아가셨다고 한다. 보건 교사 혼자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이런 상황인줄은 미처 몰랐다”며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신 것이다.

간혹 “나는 보건실 한 번도 가본적 없어. 보건선생님은 하는 일 없잖아? 아이들 아프면 약만 주면 되니 편할 것 같아”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잘못된 편견이자 선입견이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에 기대하는 건강요구 수준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가고 있다. 당연한 의견이다. 우리 보건교사들 역시 아픈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 맞추며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보건교사도 사람이다. 몸이 열 개일 수 없다.

◇ 교내 질병 케어, 처리 인력은 단 1명

실제로 이번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학교 내 보건교사들의 역할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관련 국가 여행 이력이 있는 학생‧교직원 파악 및 보고 ▲감염병 대응 위원회 소집 및 회의 준비 ▲상황 전개에 따른 보고 및 행정 업무 ▲예방교육을 위한 가정통신문 제작 및 보건수업 실시 ▲방역물품 파악 및 구입 ▲일반 환자 케어 ▲감염병 환자 또는 감염병 유사환자 케어 등으로 눈코뜰 새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특히 요즘은 나라 안팎으로 마스크 및 손세정제 품귀현상이 발생해 더 애가 탄다. 개인 방역물품 구입도 곤란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 학교 방역물품 추가 구입은 더욱 더 힘든 상황이다.

한편 지난 2016년 이후부터 감염병 발생 시 학교 내 대응 주체는 ‘모든 구성원’으로 변경된 바 있다. 과거 신종플루에 이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학생 감염병 예방‧위기 대응 매뉴얼’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 관련 비상 사태 발생 시 대응 주체는 아직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여전히 감염병 대응 업무 의존도는 학교 내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에 집중돼 있다.

◇ 학생건강 ‘보건교사 합리적 필수 배치’가 전제

신종 감염병은 끊임없이 매번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감염병예방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또 ▲성교육 ▲흡연 및 음주 예방 교육 ▲비만 예방 교육 ▲생활습관 예방 교육 ▲응급처치 교육 등은 모두 보건교사의 책임이자 업무다. 따라서 학교 내 보건교사의 적절한 배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와 관련해 현행 학교보건법은 ‘모든 학교에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둔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에는 순회 보건교사를 둘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에는 ‘18학급 미만 초등학교에 보건교사 1명을 둘 수 있다’는 임의조항같은 문구가 병기돼 있다. 해당 문구는 보건교사를 기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국회는 학생건강과 국민건강을 위한 많은 법들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훌륭한 법들이 아무리 많아도 학생과 국민의 건강 보호는 ‘핵심 인력 보건교사 배치’의 행정적 해결 없이는 실행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보건교사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교내 환경이 마련돼 있는지 또는 오히려 학교 구성원들의 업무 갈등만 야기하지 않는지, 학교현장의 어려움을 이해받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 잠들어 있는 보건교사 법안, 신속처리돼야

누군가가 말했다. “개혁의 성패는 최종적으로 구체화된 미세 정책의 실현에서 갈린다”고.

거대 교육개혁 과제에 비해 사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건교사 확충 문제에는 정부가 한결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학생 건강돌봄 및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또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번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잠들어 있는 법안들이 신속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자유한국당 한선교‧박인숙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학교보건법 개정안이 한시라도 빨리 통과돼, 학생건강과 안전에 구멍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본다.

 

<차미향 전국보건교사회장 약력>

- 신남중학교 보건교사

전국보건교사회장

중학교 보건교과서 대표저자(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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