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이재정 칼럼] “뜨끈한 굴이 울컥 빠져 나와요”
[보건교사 이재정 칼럼] “뜨끈한 굴이 울컥 빠져 나와요”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3.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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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창덕여자중학교 보건교사
이재정 창덕여자중학교 보건교사

지난해 3월, 중1 학생의 어머니께서 보건실로 전화를 하셨어요.

“우리 딸이 아직 초경을 안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게 된다면 아이에게 생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또 관리하게 해야 하는지 성교육 시간에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말하기가 좀......”

아마, 적지 않은 수의 어머니들도 같은 생각이실 거예요. 그렇다면 아빠 혼자 딸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더욱 어렵겠죠.

저는 해당 학생 어머니의 전화를 계기로 월경에 대한 보건 수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월경의 생물학적 원리와 의미 뿐만이 아니라 ‘당당한 월경’을 주제로요.

그렇게 월경 수업을 진행하면서 사실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월경 이야기를 듣고 말이죠.

수업 중 아이들에게 초경의 느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는 “속옷에 똥을 싼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또 다른 아이는 “월경혈 덩어리가 나올 때 ‘뜨끈한 굴이 울컥’하는 것 같았어요”라고 표현하더군요. 그 때 전 아이들의 직관적 표현에 무릎을 탁 쳤답니다.

제 칼럼을 읽고 계시는 베이비타임즈 여성 구독자 여러분들께도 여쭤보고 싶어요. 초경, 여러분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초경을 했답니다. 그 때는 성교육은 커녕, 월경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당시 저희집은 푸세식 변소였어요. 30촉짜리 백열등 하나 켜고, 신문이나 일일 달력을 휴지 대신 사용하곤 했죠. 저에게 변소는 늘 어두컴컴하고 무서운 곳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깜짝 놀랄만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나는데 속옷에 피가 조금 묻어있는 거예요. 다음날도 똑같이 피가 묻어 있었어요. 저는 갑작스런 상황에 무서움을 느끼며 ‘내가 죽을병에 걸렸구나’하고 생각했죠.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엄마, 나 아무래도 죽을병에 걸렸나봐......”

그 후 엄마는 저에게 두툼한 천 기저귀를 만들어 주셨어요. 초등학생 어린 소녀였던 저는 천기저귀를 하고 학교를 다녔더랬죠.

◇ ‘월경’이라는 원래 이름 찾아주기

여성이 달마다 하는일. 우리는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하고 생리라고 하죠. 월경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터부시 하다 보니 어느새 생리라고 하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생리는 남성들도 해요. 대·소변을 보는 것, 이것을 ‘생리현상’이라고 하잖아요.

이제는 생리라는 뭉뚱그린 명칭 말고 월경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대·소변도 자기 이름이 있는걸요.

월경이란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포궁(=자궁)이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난자를 수정하지 못하면 증식됐던 포궁 내막이 허물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월경 현상에 대해 요즘 여학생들은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불편하고 찝찝하고 당황스러운 것”, “여름에는 기분까지 나빠지는 것”, “키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 라고요.

하지만 여성에게 월경 현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예고없이 푹 쏟아지기도 하고, 대·소변처럼 잠시 참을 수도 없어요.

어느 날엔가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학교 내 여자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이참, OO가 남자 선생님이 옆에 계시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저한테 큰소리로 생리대를 바꾸러 화장실을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얼른 그 아이 팔을 잡아 끌고 조용히 구석으로 데려가 말해줬어요. ‘그런 건 남자 선생님 계신 데서 말하는 것이 아니야’라고요. 정말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요. 선생님, 앞으로는 성교육 시간에 남성들이 있는 곳에서는 생리 이야기 하는 것 아니라고 가르쳐 주셔야겠어요.”

그런데 정말 월경대 바꾸러 가는 일이 창피한 일일까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뒷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듯 월경대 교체도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 남·녀 모두에게 월경 교육하기

‘당당한 월경’ 수업을 시작한 후부터는 여학생들이 이런 불만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선생님 수업시간에 갑자기 월경이 나와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보건실을 갔거든요? 거기서 월경대를 받은 후 화장실로 가 월경대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어 “저는 말하기 좀 그렇지만 하는 수 없이 월경대 하느라 늦어졌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수업 전에 미리미리 안하고 수업 시간에 돌아다닌다고 꾸중하시더라고요. 정말 억울했어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이 같은 사례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월경 교육을 남성과 여성이 함께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끄럽고 모르니까 서로 불편한거죠.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요.

◇ 당당하게 월경하기

요즘은 학교에서도 생리통으로 결석할 경우, 한 달에 한 번은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것 다들 알고 계시나요? 보건실에서 월경통으로 한 시간 안정한 후 ‘안정 이유’에 대해 보건교사의 확인을 받으면 출석으로 인정해줘요.

그런데 어떤 여학생이 안정 이유를 월경통이 아닌 단순 복통으로 써달라고 하더군요. 남자 담임선생님께 월경통이라는 내용이 담긴 확인서를 내는 것이 부끄럽다고요.

제가 월경으로 인한 확인증이 있으면 출석이 인정된다고 설명했지만 그 아이는 결국 그냥 결과처리 하겠다고 말했어요

◇ 월경 용품, 꼼꼼하게 선택하기

과거, 저는 아이들에게 월경대를 어떻게 선택하는지 물어 본 적이 있어요. 이 질문에 한 아이가 “20년 이상 월경을 한 엄마에게 물어봐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아이들은 저에게 이런 질문도 했어요. “선생님, 어떤 생리대가 제일 안전해요?” 당시는 생리대 내 유해성분 검출 논란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생리대는 내 몸에 직접 닿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더 스스로 꼼꼼하게 따져 선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가 추천해서’, ‘엄마·언니가 쓰던 것’, ‘싼 제품’이 아니라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대표 여성용품인 생리대의 안전성은 아직 보장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소비자가 똑똑해지면 언젠가 만드는 사람도 책임감을 가지게 되겠죠.

저는 앞으로 월경을 월경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월경통이 심한 여성들의 건강을 위해 배려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또 그래야만 여성 스스로도 긍정적인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어요.

앞서 얘기했 듯, 우리가 그동안 부끄럽고 불편해 했던 이유는 결국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니까요.

 

 

<이재정 창덕여자중학교 보건교사 약력>

- 現 창덕여자중학교 보건교사

- 現 전국보건교사회 학술이사

- 現 대한성학회 성교육위원회 위원

- 現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성폭력예방교육 분야 위촉강사

- 現 모험상담 교과교육연구회 연수 강사

- 現 와이스토리 전문 필진

- 2015~2018년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학생건강정보센터 웹사이트 실무위원 및 자료 개발(성교육 분야)

- 2015 개정 보건교과 교육과정 평가기준 공동 개발

- 2018 학생 참여중심 흡연에방 교육 중등 자료 공동 집필(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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