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린도후서 1:6)
러시아 포크송 중에 ‘보로디노’(Borodino)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프랑스 군대와 러시아 군대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보로디노(Borodino) 전투’를 기리는 내용입니다.
노래 가사는 할아버지가 젊은이에게 ‘보로디노 전투’의 무용담을 전하는 내용인데 마지막에 젊은이가 물어봅니다. ‘그래서 러시아군은 승리했습니까?’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답하길 ‘러시아군이 패배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래는 이렇게 끝납니다.
할아버지는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러시아가 패배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함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차이를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신학적인 차이로 교단이 발단하고 교파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령 능력을 경험해 보았던 오순절 교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 은사주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신다’라는 것을 우선적인 플랫폼으로 내걸고, 어떻게 하면 병이 나을 수 있느냐? 병에서 나을 수 있는 믿음, 병을 고칠 수 있는 기도를 강조하기에 예수님의 이적, 예수님의 표적 등을 강조하려 합니다.
이와 달리 칼빈주의(Calvinism) 교회, 여기에는 장로교회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왜 사람이 항상 낫지 않느냐?’ ‘왜 하나님이 항상 병자를 고쳐주지 않느냐?’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사람이 질병을 받아들여야 하느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를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할 때, ‘예수님의 이적, 기사를 말하기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든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등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를 강조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병은 다 고쳐주셨지만, 당신의 고난은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죽하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는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감동을 받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당한 모습입니까? 둘 다이시죠.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만 하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이 영광만 누리시고 고난을 감당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주께서'가 떠오릅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머리글 말씀은 바울이 자기가 고난당한 이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그 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밤을 지나왔기에 지금 고린도교회의 우는 성도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성가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사람을 살리는 이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지나온 사람이다. 물론 상처가 있다고 다 치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싸매지 않은 상처는 곪아서 남에게 옮길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로 싸매어진 상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이 되고, 그 곁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 믿음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되돌아가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많이 생각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신다.’(God is for us.)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그 어떤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며,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이루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