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육신의 생각과 영(靈)의 생각
[변요한목사 시론] 육신의 생각과 영(靈)의 생각
  • 임지영 기자
  • 승인 2026.09.0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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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고린도후서 10: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평안이니라”(로마서 8:5~6)고 했습니다.

여기서 ‘육신의 생각’이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주어졌을 때, 인내와 지혜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좌절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각이 영적인 생각이라면, 하나님을 등진 인간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육신의 생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7) 했습니다.

그런데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생각하지 말고 믿으라고 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믿으면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은 질문하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것은 문제 있다고 판단하여 질문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온전히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예를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가스실에서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한 아이히만이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 요원들에게 체포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재판정에 앉아 있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본 요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기자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표현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이 지시받은 것을 기계적으로 수행한 인간에 불과했으며,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선을 행하는지 악을 행하는지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C.S. 루이스(C.S. Lewis)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 보면, 지옥의 고위 관리인 스크루테이프가 자기들의 ‘먹거리’ 환자를 지옥으로 데려갈 임무를 맡은 조카 웜우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웜우드의 임무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너의 임무는 환자 곁에서 그가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려 깊은 생각’은 무엇일까를 살펴봤습니다. 오늘 머리글 본문에 이어 고린도후서 10장 7절에는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3절과 7절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울과 그 대적들 사이에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선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 세력을 키우고 교회 내의 주도권을 잡을까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어서 바울을 공격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에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 내의 주도권 싸움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가 주도권을 가지신 공동체가 되는 것,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과 자신이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대적들의 이런 공격이 다 육신에 속한 일일뿐이고, 외모만 보고 하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주도권이 손상을 입을까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생각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의 논리, 세상 사람의 삶의 방식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논리와 삶의 방식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논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아시는 주님! 오늘도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셔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주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아름답고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심을 믿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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