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창공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고 여행으로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도중 비행기가 갑자기 공중에서 불연속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불연속선은 일종의 공기 진공상태로 밀도나 온도, 습도, 풍속, 풍향 등의 기상요소가 다른 두 기층이 대립하는 상태인데, 이때 비행기는 10~20m씩 급작스럽게 하강하게 되고 기체가 안정을 잃게 됩니다. 이에 기내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놀라서 사색이 되어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에 회개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할 때마다 맨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이 어린 소녀는 다른 승객들과 다르게 이러함이 마냥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얼마 뒤에 비행기는 다시 안정권 안으로 들어오고 놀란 가슴들을 부여잡은 승객들이 어린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비행기가 진동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 무섭지 않더냐?’ 이에 소녀는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이어 승객들이 ‘우리 모두 두려웠는데 너는 왜 무섭지 않았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소녀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이 비행기는 우리 아빠가 조종하고 있기에 저는 우리 아빠를 믿어요.’ 이처럼 우리도 우리 인생의 조종사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며 승리할 줄 믿습니다.
오늘 머리글에서 “주”는 헬라어로 ‘아르케곤’(ἀρχηγὸν)의 원형인 ‘아르케고스’로 ‘시작, 창시’를 의미하는 ‘아르케’와 ‘이끌고 가다’를 의미하는 ‘아르코’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 ‘시작을 선도하는’ ‘첫째 원인을 이끄는’ 의미이며, “온전하게 하시는 이”로 번역된 ‘텔레이오텐’(τελειωτὴν)의 원형 ‘텔레이오테스’는 ‘완전케 하는 자’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완성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과 근원이시며 믿음의 마침이자 완성이시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내 마음의 소원을 아뢰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미국의 한 신발회사에서 두 사람의 영업부 직원을 아프리카로 보내서 시장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아프리카를 가서 보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두 맨발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에 돌아와 한 사람이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맨발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신발을 팔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이 모두 맨발로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발을 신게 한다면 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을 똑같은 눈으로 보았는데, 한 사람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 것이고 한 사람은 긍정적인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창세기 13장 9절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러자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물이 풍부한 것을 보고 선택하여 갔습니다. 반면에 아브람(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소금기둥’의 이야기처럼 소돔과 고모라 성과 함께 망하고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무엇을 어떻게 보고 마음에 들어와서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인생과 신앙의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브리서 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