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10)
사도 바울은 오늘 머리글을 통해 “약할 그때가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실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고 있을 때가 3차전도 여행 중이었는데, 이때까지 이미 많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세 차례나 자신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한 것만큼, 몸이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약한 몸으로 1차전도 여행 때 13개 도시를 돌면서 2,300km를 이동했고, 2차 때는 21개 도시를 돌면서 5,000km, 3차 때는 24개 도시를 돌면서 6,000km를 이동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바울이 쓴 13권의 성경 중에 이미 이때까지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갈라디아서 성경을 쓴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약할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바울이 약할 때 능력을 주셨을까요? 그가 전심으로 절박하게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약하기에 겸손하게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무릎 꿇고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도가 거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기뻐한다고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9)
자식을 다섯 명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유독 병약하고 총명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골수염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늘 주눅이 들어 있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다섯 그루의 나무를 사 왔습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 한 그루씩 나눠 주면서 1년 동안 가장 잘 키운 자식에게 무엇이든지 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년 후 약속대로 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한 나무만 다른 나무에 비해 키도 크고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놀랍게도 그 나무는 병약해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아들의 나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병약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줄테니 말하라’고 했지만,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나무를 잘 키우는 것을 보니까 식물학자가 될 것 같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모든 가족 앞에서 공포를 했습니다.
이에 병약한 그 아들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분 있는 지지와 성원에 고조되어 식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에 부풀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잘 자란 나무가 고맙고 신기해서 숲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스름한 안개 속에 움직이는 물체가 나무 주변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들은 숨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는데 물 조리개를 들고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약한 아들을 위해 물과 거름을 주면서 매일 보살핀 것입니다. 아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하셨구나. 내가 모르는 그 시간에 내가 모르는 그 일을 아버지가 하시고 계셨구나!’ 그 후 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가 미국에서 역사상 유일하게 4선을 한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입니다.
아들러(Alfred Adler) 심리학을 다룬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언급한 ‘자기수용’(self acceptance)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바꿀 수 없는 한계를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 말입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도 ‘하나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양자를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인생에서 자기수용의 원리를 배우지 못하면 삶이 늘 불행합니다. 불행한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한계나 자신의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가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기 위해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수용 토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