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범위 대법 판례 변경 의미
[사람과 법률]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범위 대법 판례 변경 의미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10.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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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재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배성재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형법 제293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추행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2023.9.21.선고 2018도13877 사건(이하 현행 판례)에서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범위를 새롭게 정의했다. 즉 상대방의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현행 판례를 보도한 언론 기사 제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대법, 공포심만 유발해도 강제추행죄 처벌 가능’(동아일보), ‘대법 강제추행죄 판단 기준 넓혔다…공포심 유발도 인정’(시사저널) 언론은 왜 강제추행죄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평가하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강제추행죄의 적용 요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대법원 2013도5896). 성적 자유란 각 개인이 자기 책임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적 행위를 할 권리와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거부할 권리를 의미한다(대법원 2015도9436).

그러므로 추행인지 아닌지 판단할 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했는지가 주요 요건이 된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를 만지는 행위뿐만 아니라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이익을 가할 것처럼 협박해 목 뒤로 팔을 감아 돌리는 러브샷의 방법으로 술을 마시게 하거나(대법원 2007도10050) 엘리베이터 내에서 피해자를 칼로 위협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대법원 2009도13716)도 추행에 해당한다.

강제추행죄 규정만 놓고 보면, 폭행 또는 협박 후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인 폭행이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인 경우 강제추행죄에 해당할까?

여러 미용실을 가맹점으로 하는 미용실 업체를 운영하는 C가 가맹점 소속 직원인 D를 포함한 여러 직원과 함께 노래방에서 회식하던 중 D를 옆자리에 앉힌 후 귓속말로 ‘일하는 것 어렵지 않냐.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D의 볼에 입을 맞췄다. 또 D가 거부함에도 ‘괜찮다, 힘든 것 있으면 말해라, 무엇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오른손으로 D의 오른쪽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D의 의사에 반해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가 폭행행위 그 자체로서 추행인 기습추행에 해당하므로 C를 강제추행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대법원 2019도15994).

다른 예로 E가 밤에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버스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는 F를 발견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따라가 인적 없고 외진 곳에서 가까이 접근해 껴안으려 했으나 F가 뒤돌아보면서 소리치자 그 상태로 몇 초 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간 경우에도 대법원은 E의 팔이 F의 몸에 닿지는 않았더라도 갑자기 뒤에서 껴안으려는 행위는 F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이면서 추행인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봤다(대법원 2015도6980).

그런데 현행 판례 이전 대법원은 기습추행과 폭행·협박 이후 추행 행위가 이뤄지는 경우에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폭행·협박의 정도를 다르게 봤다.

즉 폭행·협박 이후 추행 행위가 이뤄지는 경우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인해 피해자의 항거, 즉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하지만(대법원 2011도8805), 기습추행의 경우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만 있으면 될 뿐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일 필요가 없다고 봤다(대법원 2019도15994).

그러나 현행 판례는 폭행·협박 이후 추행 행위가 이뤄지는 경우에도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일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변경했다. 즉,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기존보다 덜 엄격하게 해석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 변경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현행 판례에서 문제된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A는 B와 사촌 관계로 2014년 8월 15일, A의 집에서 B의 과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A는 B에게 ‘내 것 좀 만져줄 수 있나’라고 물어봤고 B가 다시 말해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B의 왼손을 잡아 A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B가 이를 거부하며 집에 가겠다고 하자 A는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냐’며 B를 양팔로 끌어안았고, B가 뒷걸음질 치다 침대에 넘어지자 A가 위로 같이 넘어졌다. A는 B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고 물어봤고, B가 겁이 나서 대답하지 못하자 A는 피해자의 가슴을 약 30초간 만졌다. B가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큰일 난다’며 팔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면서 방에서 나가려고 하자 A는 B를 뒤따라가 30초 이상 끌어안았다.

1심은 A에 대하여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봤다. 2심은 A가 한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나’는 말이 B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지 않았다. 또 A가 B를 침대에 눕히거나 끌어안을 때 B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으므로 A의 유형력 행사가 B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봤다.

그러나 현행 판례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우선 강제의 사전적 의미는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키는 것일 뿐 저항을 곤란하게 할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닌 폭행·협박으로 추행을 해도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강제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또한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을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볼 경우 피해자가 추행행위에 대해 저항이 없었다면 추행이 있었더라도 성적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사기관이나 재판 과정에서 폭행·협박이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폭행·협박이 있었다면 사실상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근거를 종합해 강제추행죄에서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일 필요가 없고 폭행·협박이 있으면 된다고 보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대법원은 2심과 달리 A에게 강제추행죄가 적용됨이 옳다고 봤다.

다만 일부 대법관이 보충의견으로 외국과 달리 현행 판례에 의하더라도 피해자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이른바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견해를 제시한 점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배성재 변호사 프로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경제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
- 現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 서울동부지방법원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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