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림책을 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제자리를 찾습니다》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6.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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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뒤코스 글·그림, 이세진 옮김, 국민서관 출판, 2023년 5월
막스 뒤코스 글·그림, 이세진 옮김, 국민서관 출판, 2023년 5월. (사진=국민서관 제공)

이촌역에 있는 중앙박물관에 가면 박물관 관람을 하고 나서 꼭 시간을 보내는 곳이 연못 앞 벤치입니다. 계절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에 몇 마리 오리가 노는 것도 보고 팔뚝만큼 큰 잉어가 헤엄치는 것을 보면 힘든 기억은 사그라지고 마음이 편해져 기쁘게 돌아오곤 했습니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참 소중한 장소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곳 연못을 메우고 건물을 짓는다면 무척 속상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도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본문 이미지. (사진=국민서관 제공)
도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본문 이미지. (사진=국민서관 제공)

연못은 할아버지에게 매우 소중한 친구입니다. 하루는 땅 주인이 찾아와 그곳에 주차장을 만들 거라며 당장 떠나라고 합니다. 연못은 어찌하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비웃으면서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그 말 한마디는 마법이 되어 연못은 돗자리처럼 돌돌 말아지고,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못을 어깨에 척 걸치고는 기차를 타러 갑니다.

딱히 갈 곳이 없는 할아버지는 도시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갔습니다. 여동생은 고양이 때문에 거실에 연못을 두기 곤란하다고 해요. 이웃에 사는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 연못을 가져가자 학생들은 좋아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모기가 많이 꼬여 연못을 둘 수 없다고 합니다.

시청에 가서 연못 둘 자리를 알아봤지만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얘기에 할아버지는 무척 속상했습니다. 공원도 쇼핑센터도 병원 앞 정원도 미술관도 모두 연못이 있기에 알맞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도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본문 이미지. (사진=국민서관 제공)

할아버지는 말라서 물웅덩이처럼 쪼그라진 연못을 들고 기차에 올라 맨 끝 동네로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맨 끝 건물 뒤 작은 정원을 찾아 연못을 펼쳐놓고는 비가 오기를 기도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대로 사흘 내내 내린 비로 연못은 원래 크기를 되찾았습니다.

연못을 구경하던 노부인이 자신의 집에도 연못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노부인의 마당으로 연못을 옮겨놓았습니다. 노부인의 아버지가 쓰던 샘을 찾아 물줄기를 흐르게 하니 연못 마를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이제야 연못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연못은 어떤 의미이길래 그렇게 소중히 여기며 끝까지 연못을 지키려고 애썼을까요. 연꽃과 부들, 들풀이 자라고 개구리가 헤엄치며 나비, 잠자리, 풀벌레가 놀러 오는 연못은 할아버지에게 좋은 친구 이상이었을 거예요. 그런 소중한 곳이 주차장이라는 경제 논리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자리를 내줘야 했으니 많이 속상했겠지요.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로만 칭송할 뿐, 정작 돈 앞에서는 아름다운 자연도 그것을 오래 지켜온 사람도 초라해지고 쫓겨나는 모습은 독자를 씁쓸하게 만듭니다.

연못이 있을 곳을 찾아 이곳저곳 떠도는 할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굽어지고, 연못도 할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듯 크기가 줄어들어요. 마치 그 모습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며 뉴스에서 보도되던 설 자리를 잃어버릴까 불안한 미래의 우리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인생이라는 길지 않은 여정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연못을 통해 보입니다.

도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본문 이미지. (사진=국민서관 제공)
도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본문 이미지. (사진=국민서관 제공)

작가는 할아버지와 연못, 연못 주변의 생물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갖게 그렸습니다. 연못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회색으로 그려졌어요. 연못은 웅덩이처럼 작아졌어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유지하려 애씁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라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마침내 연못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찾았을 때 멋지고 화려한 장소는 아니지만, 할아버지와 연못에는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뒤 면지의 그림에서 연못은 작은 동물과 곤충들이 짝짓기하고 보금자리를 꾸미는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할아버지와 노부인은 좋은 친구가 되어 연못과 작은 생물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인생이란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제자리는 있고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빛이 난다며 위로를 전합니다.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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