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보다] 오늘도 나의 길을 간다 《나는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
[그림책을 보다] 오늘도 나의 길을 간다 《나는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4.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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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글, 최경식 그림, 만만한책방, 2019년 9월.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미항공우주국(NASA)은 2003년 6월과 7월에 화성 탐사 로봇을 발사합니다. 2004년 각각 화성의 반대 표면에 착륙한 이들은 쌍둥이로, 바이킹 1·2호, 패스파인더호에 이어 세 번째, 네 번째로 화성 탐사에 나선 로봇입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라는 이름은 아홉 살 소녀 콜리스가 지어주었습니다.

이 두 로봇은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위한 탐사 활동을 수행했으며, 당초 기대 탐사 시간은 ‘90솔’로 지구 시간 90일 정도였으나 이를 훨씬 넘어서는 오랜 기간 탐사작업을 펼치다 스피릿은 2011년, 오퍼튜니티는 2019년에 영면했습니다.

특히 오퍼튜니티는 15년 동안 42.16km를 이동하며 화성에 물이 있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사진과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왔습니다.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생명이 없는 로봇을 의인화한 그림책은 지구와 멀리 떨어진 화성에서 홀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오퍼튜니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m를 가는 데 1분이나 걸릴 정도로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가며 주위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혹한 추위를 견디고 붉은 바람 먼지를 헤치며 구덩이를 건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그 모습이 꼭 일 때문에 먼 곳에 홀로 보낸 친구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오퍼튜니티가 비탈을 내려가야 할 때나 바퀴가 고장 났을 때 지구에 있는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오퍼튜니티가 잘 헤쳐나가길 응원합니다.

모래사장을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흙먼지로 깜깜한 앞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때도 오퍼튜니티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괜찮다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오퍼튜니티는 마지막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오늘도 앞에 펼쳐진 길을 삐걱거리는 바퀴로 열심히 달려갑니다. 흙먼지가 자욱한 화성의 붉은 땅 위로 두 줄기 선명한 바퀴 자국은 오롯이 오퍼튜니티가 만든 길입니다. 우주의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 오퍼튜니티가 처음으로 만들 길은 우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위험도 없지만 발견도 없다. 조금씩, 천천히,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책의 구절 중 가장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위험하니까, 어려워서, 다른 문제 때문에 등등 그동안 지레짐작해 일을 회피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였는데, 오퍼튜니티의 저 끈기로 가득 찬 혼잣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합니다.

글을 쓴 이현 작가의 마음과 오퍼튜니티의 마음이 같았을 거예요. 세상 모든 힘든 일에 직면한 이들에게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작가와 오퍼튜니티 덕분에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사진=만만한책방 제공)

그림을 그린 최경식 작가는 오직 연필과 샤프펜슬만으로 그렸습니다. 우주의 검은 공간도, 끝없이 넓은 화성의 대지도, 분화구 가장자리의 울퉁불퉁한 바위들도 모두 연필과 샤프펜슬의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얼마나 길고 지루한 작업이었을까요.

오퍼튜니티가 홀로 보낸 외롭고 긴 시간처럼 작가도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외롭고 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작가와 오퍼튜니티의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퍼튜니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위험도 없지만 발견도 없다고, 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의 길을 가라고.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글쓴이·김선아>

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그림책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그림책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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