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세상’은 없다...가상 세계의 어두운 그늘
‘만능 세상’은 없다...가상 세계의 어두운 그늘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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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확산하는 메타버스, 명과 암 ②
메타버스 도래한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메타버스를 외치는 곳은 많다. 하지만 그만큼 메타버스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개념 같으면서도 누군가는 원래 있었던 개념이라 보기도 하고,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단 같으면서도 누군가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서로 다르게 정의하는 만큼 메타버스가 가져올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특히 메타버스 자체가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이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과, 메타버스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메타버스가 가져올 미래, 좋을까?

에버노트의 공동창업자이며, 가상 카메라 앱 ‘음흠’을 서비스하는 올터틀즈의 설립자인 필 리빈은 지난달 5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메타버스가 너무 싫다. 너무, 너무 싫다(I hate the metaverse so much. So, so much).”고 올렸다. 유명한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심지어 지금도 ‘가상 카메라’라는 영역에 뛰어든 테크 기업인이 메타버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리빈은 이후 한 테크 팟캐스트에 출연해 메타버스가 사람들을 현실에서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했다. 리빈은 팟캐스트에서 “우리는 더이상 현실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 상황에서 인류를 현실에서 더 떨어지게 한다면 무척 큰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확증편향’으로 인해 현실과 괴리를 느끼게 된다는 지적은 이미 많이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대표적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동영상 시청을 분석해 선호에 맞는 내용을 추천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시청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튜브는 수많은 영상을 제공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영상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영상만을 제공한다.

리빈은 “메타버스가 그 문제를 극단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으로 대체한다면 문제가 더 나빠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에버노트 창업주 필 리빈의 트위터. (사진=트위터 갈무리)
에버노트 창업주 필 리빈의 트위터. (사진=트위터 갈무리)

정작 돈이 많은 사람은 메타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1930년대 경제학자 케인스는 자신의 에세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에서 100년 후의 세계에 대해 ▲생산성 증대로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 되고 ▲경제적 문제가 해결돼 관심이 즐거움과 아름다움에만 집중되며 ▲사람들이 화폐가 아닌 ‘선한 것’에 주목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케인스의 논리에 따르면, 사회는 기술 발전을 통해 생산성을 계속해서 끌어올리게 된다. 로봇화,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근로시간이 줄어든다. 사람의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시간이 남게 되고,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킨 인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집중하며 그 시간을 여가에 활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가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곧 돈이 적게 드는 여가 문화 발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존의 유튜브, 넷플릭스 등 방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저렴한 여가는 쉽게 지루해진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여기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공간이 그 대안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지금처럼 해외여행이나 공연, 스포츠레저 등을 1년에 몇 번 즐기는 정도라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지만 여가시간이 늘어난 미래에는 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며 “돈이 많은 사람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용이 적게 드는 수단을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돈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발생한다. 지난해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며 메타버스 분야에 뛰어들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는 실제로 하와이의 한 섬에서 사유지를 계속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에게 메타버스를 외치고, 메타버스에 투자하는 사람일지라도 돈만 많다면 굳이 메타버스를 선택하지 않으리라는 방증이다.

◆ 윤리적 문제,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가디언지의 비디오 게임 편집인 케자 맥도날드(Keza Mcdonald)는 “가상 세계는 본질적으로 현실(real one)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상 세계에도 노동 착취와 혐오,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며 “메타버스가 현실의 이러한 문제들을 마법처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허황된 생각(fantasy)”이라고 주장했다.

맥도날드의 지적처럼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가상 세계 안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비단 어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 등 14명이 공동주최한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권인숙 의원실 제공)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메타버스 성착취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권인숙 의원실 제공)

토론회에 참여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메타버스 산업의 발전과 함께 메타버스의 주 이용자인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 사례가 함께 증가하고 있지만 아날로그 공간에 기반해 만들어진 현행법은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메타버스 사용자의 대부분이 아동·청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실효성 있는 규제 체계가 시급하다”고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메타버스의 주 사용자인 아동으로부터 노동력을 착취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용자가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자연스럽게 어린이도 메타버스 속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창작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번 아웃’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지난달 영국 가디언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들다가 전문 게임 제작자로부터 협업 요청을 받은 아동·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만으로 12세에서 16세 정도인 이들은 열성적으로 협업에 임하다가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3D 디자인 등 게임 제작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어린 제작자들과 정식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무리하게 업무 참여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의 노동 착취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진규 네이버 CPO(개인정보보호책임자, 이사)는 “오픈 플랫폼인 메타버스에서는 각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 프레임워크를 별도로 형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술적 제약 때문은 아니지만 메타버스 자체가 ‘경험’을 중심으로 참여에 몰입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현실에서 메타버스에 접속할 때의 연령 검증은 일단 메타버스에 접속하고 나면 무용하다. 그렇다고 부모가 메타버스에서 아동의 모든 경험에 동행할 수도 없다”며 “일반 온라인 서비스가 제공하는 아동을 위한 보호벽이 메타버스에서도 동일하게 제공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도전적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아바타 복제나 스토킹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특정 사회적 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차등적인 경험을 제공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 메타버스의 윤리 이슈는 다양하다. 가상 세계도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메타버스가 가져올 미래는 반드시 장밋빛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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