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행 칼럼] 코로나19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대면 여성일자리
[이선행 칼럼] 코로나19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의 대면 여성일자리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0.07.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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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이선행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 전문연구원

“아이돌보미나, 가사노동자나, 방과후학교 강사나 여성들은 자신의 일에 굉장히 보람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여성이 하는 일들을 재능기부 차원으로 치부를 하고 적정한 대가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우선 일이 재밌고 보람 있으니까 그것에 치중을 하다가 이렇게 경제위기와 고용위기가 오면 그것을 온몸으로 감당을 해야 하는…”

지난 6월 1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여성·가족 분야별 릴레이 토론회’에서 발제자(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마지막 멘트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여성노동 연구에 바친 연구자의 안타까움과 노동시장 가장 하층부에서 경제위기의 충격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 날의 토론회에는 코로나19라는 주제에 걸맞게 좌장, 발제자, 토론자 등 모든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비공개 영상녹화로 진행됐다. 전염병의 대유행이 포럼이나 토론회 등 필자가 속한 직장의 일상적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릴레이 토론회의 두 번째 순서로 기획된 이 날의 행사는 ‘코로나19 이후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여성노동자 위기 현황과 정책과제’라는 주제로 아이돌보미, 가사노동자, 방과후학교 강사 직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 직종의 공통점은 첫째로 여성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대면 일자리라는 점, 마지막으로 본인의 노동력을 팔아 소득을 취하는 실질적인 임금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고용안정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일자리라는 점 등이다.

돌봄영역의 대면서비스를 제공해야 함에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자리라고 한다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의 위기 아래에서 이들 노동자들이 마주치고 있을 현실은 굳이 조사를 해 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이 조사에서는 가사근로자 290명, 아이돌보미 500명, 방과후학교 강사 306명 등 총 1096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도 높게 진행되었던 4월 기준으로 방문 혹은 돌봄가정, 출강 학교 수, 근무시간 및 수입의 변화, 정책 수요,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한 긴급 지원책의 인지도 및 수혜여부, 삶의 만족수준 변화 등을 질문했다.

 

[표] 고용보험 가입비율 및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수입
[표] 고용보험 가입비율 및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수입

위의 표는 세 직종의 고용보험 가입비율과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수입을 나타낸 것이다. 세 직종 모두 코로나 19 이후 일자리 상실, 수입 감소 등의 큰 타격을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방과후학교 강사는 학교가 개교하지 않아 수입이 0원인 비율이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비율 역시 87.9%를 차지해 실업 시 고용안정망의 사각지대로써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한 고용상태의 급격한 변화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변화로 그대로 연결된다. 이 조사에서는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 수준을 지난 1년 전과 비교하였는데, 건강, 일자리, 가계재무 상태, 가족관계, 친구관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등 총 6가지 영역에 대해 질문했고 0점에서 10점까지 구간을 설정하여 만족도가 높을수록 점수가 높아지도록 설문지를 구성했다.

 

[표] 코로나19 이후 삶의 만족도 변화
[표] 코로나19 이후 삶의 만족도 변화

1년 전과 비교하면 방과후학교 강사의 삶의 만족도 수준이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일자리 및 가계 재무상태의 만족도와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만족’에서 ‘불만족’ 수준으로 급락한 패턴을 확인했다. 방과후학교 강사가 젊은 연령대 및 대졸 이상의 전문직일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임을 가정할 때 이들 집단의 일자리 및 소득의 상실로 인한 박탈감과 경제적 충격이 더욱 클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날 토론자로 나섰던 권현숙 공공연대노동조합 아이돌봄분과 위원장의 한마디가 이들 세 직종의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대변해 준다.

“오늘 김난주 박사님의 발표를 듣다가, ‘웃프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마 아이돌보미가 오늘 논의가 된 여성일자리 중 가장 괜찮은 일자리라는 사실이 우습고 슬프다는….”

그동안 대표적인 저임금 여성 일자리로 취급되어왔던 아이돌보미가 그나마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아이돌봄지원사업’의 종사자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좋은 일자리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연구결과에 대한 자조 섞인 농담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진 이래 70년 동안 견고한 성벽처럼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가사사용인 제외’라는 11조 조항에 따라 노동자로써의 권리를 모두 박탈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자나, 교원단체들의 반대로 여전히 방과후학교의 법적 근거를 만들지 못해 실제 학교 교육과 돌봄의 공백을 전담해 왔음에도 위기가 오자마자 소득이 ‘0’원이 되는 방과후학교 강사의 처지에 비하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계취소’로 일자리가 없어질지언정 고용안정망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이돌보미가 어쩌면 실제로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지 않다.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위기는 항상 성차별을 심화시킨다.” 유엔여성기구 마리아 홀츠버그 특보(인도주의 및 재난위험 특보)의 말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근로시간 단축도 물론 중요한 노동이슈이다. 민식이법으로 대변되는 자녀들의 안전, 입시제도 개선 등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우리 사회의 교육과 돌봄 이슈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뀔 때마다 여성노동 이슈는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나곤 했다.

국회문턱을 겨우 넘었던 가사노동자 권리보장법은 19대 국회에서도 20대 국회에서도 회기 만료로 폐기되어 버렸다. 재정 건전성에는 목을 매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에는 인색한 경제관료들, 이른바 우리 사회의 주류로 분류되는 이익집단들의 반대로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돌봄의 사각지대를 담당해 왔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전염병의 위기 아래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이 그토록 말했던 예산과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도 전혀 손색없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미루어 왔던 과제들을 추진할 때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 함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본 기고문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6월 18일에 개최된 제2차 코로나19 관련 여성·가족 분야별 릴레이 토론회 “코로나19 이후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여성노동자 위기 현황과 정책과제”(김난주·이선행)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고, 토론회의 모든 내용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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