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빛나라의 LAW칼럼] 감정노동자와 산재
[오빛나라의 LAW칼럼] 감정노동자와 산재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9.04.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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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현 노동팀 변호사 오빛나라
법무법인 현 노동팀 변호사 오빛나라

고객상담센터에 전화를 걸면 상담원과 연결되기 전 폭언 등을 하지 아니하도록 요청하는 음성 안내가 나오는 게 이제는 익숙하다. ‘상담원도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멘트에 고개를 끄덕일 때쯤이면 친절한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화라는 기계적 매개체를 통해 소통한다고 하여 상담원이 기계인 것은 아닌데, 왜 그동안 상담원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을까. 서비스를 구매한다고 해서 노동자 개인의 감정까지 살 수 있는 건 아닌데, 왜 그리 완벽한 친절함을 고집했을까.

‘감정노동자’란 용어는 앨리 러셀 혹실드의 저서 ‘감정노동’에서 처음 등장했다. 저자는 자본의 이익 창출을 위해 노동자의 감정이 동원되고 통제되는 현상에 대해 연구, 분석했다. 노동자들은 서비스 만족도 향상이라는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방적인 친절을 강요당하며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에서 소외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감정노동자는 약 800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감정노동자의 수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취약한 업무환경에서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왔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이다. 여성 상담원들은 노골적인 성희롱을 당하기도 하고 반말, 욕설, 폭언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다수의 콜센터 상담원들은 고객으로부터 언어폭력을 경험하지만 대부분은 참고 넘어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친절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기업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콜센터 상담원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감정노동이 심해지면 노동자들은 감정의 부조화로 우울증, 적응장애 등 정신질병이 생길 수 있고, 신체적으로도 고혈압, 심장질환 등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당연하게 제공받아오던 완벽한 서비스, 그 이면에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면서 근래 감정노동자들의 산재 승인 여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월요일 오전에 고객 상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콜센터 상담원에게 산재 불승인 처분을 한 사안에서 법원은 콜센터 상담원은 응대방식에서 지나친 친절을 강요받고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등 업무 자체가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주며, 10년간 동종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었고, 월요일에 평소보다 과중한 업무강도 및 업무량을 소화해야한다는 긴장감 및 압박감이 더욱 컸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뇌출혈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통신사 콜센터 상담사가 고객에게 6시간가량 괴롭힘을 당하고 악성 민원 고객에게 시달리다 퇴사 후 재입사한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서울질병판정위원회가 이를 산재로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콜센터 직원이 사이버 성폭력으로 얻은 정신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감정노동자의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장애, 자살 등 정신질병이 산재에 해당하는지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①감정노동의 빈도, ②감정의 주의성과 다양성, ③조직의 관리와 보호, ④감정손상, ⑤문제고객 발생시 처리 사례 등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야한다.

문제 해결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는지, 문제 발생시 근로자 보호조치 관련 매뉴얼이 존재하는지, 문제 발생시 근로자의 권한과 자율성이 어느 정도로 보장되는지, 근로자의 고객응대형태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 문제 발생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사노무제도가 존재하는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동영상 감정노동 종합편 화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동영상 감정노동 종합편 화면.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칭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 2)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약 6개월이 지났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게시하거나 음성안내를 하고,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매뉴얼의 내용 및 건강장해 예방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그밖에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휴게시간의 연장,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 고발, 손해배상청구 지원을 해야 하고, 근로자는 이러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사업주가 이러한 요구를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

사업주에게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중요한 목표겠지만 그 이전에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과태료가 부과된 건이 한 건도 없어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유명무실해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감정노동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체계적인 대책 마련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충실하게 시행되고 감정노동에 취약한 사업체들을 제대로 감독하여 감정노동자의 건강장해가 예방해야 한다.

또한 감정노동자보호법의 시행과 발맞추어 감정노동자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제대로 평가받아 감정노동자가 정신질병이나 자살, 과로사를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긍정적인 변화 역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빛나라 변호사 약력>
-現 법무법인(유) 현 노동팀 변호사
-現 대한변협 인증 산재 전문 변호사
-現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자문위원
-現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
-現 서울글로벌센터 자문위원
-現 수협 공제분쟁심의위원회 위원
-前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사법시험 54회 합격
-사법연수원 44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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