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영변호사의 법률창] 생식건강 유해인자 노출 근로자의 건강권
[윤미영변호사의 법률창] 생식건강 유해인자 노출 근로자의 건강권
  • 김복만 기자
  • 승인 2019.01.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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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영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윤미영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생식독성물질’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식독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근로자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생식독성물질’이란 사람의 생식기능이나 태아의 발생, 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물질을 말한다.

고용노동부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에 포함된 717종의 화학물질 중 생식독성물질은 44종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 범주에 따라 관리대상 유해물질 32종, 작업환경측정 대상물질 31종, 특수건강검진 대상물질 30종이 지정되어 있다.

더 나아가 ‘생식건강 유해인자’는 생식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은 물론, 야간근무, 입식근로 등 작업환경까지 포함한다.

‘생식독성물질’이나 ‘생식건강 유해인자’라는 단어에 대해 생소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업무상 원인으로 난임, 불임, 유산, 선천성장애아 출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동안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유전적 소인 등 개인 영역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선천성장애아 출산이 이슈가 되면서, 업무상 원인으로 임신 및 자녀 출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 및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령의 개정을 권고했다. 이번 권고의 주된 목적은 ‘생식독성물질을 비롯한 생식건강 유해인자로부터 근로자와 그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다.

생식건강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은 근로자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녀에게도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본인이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및 그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근로자는 별로 없으리라 짐작된다.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는 근로자가 쉽게 인지하기 어렵고, 실제 작업현장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고지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결정에서 근로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유해 화학물질 고지 방안을 수립하고, 근로자가 안전보건 자료를 열람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생식독성물질로부터 임산부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시행령 상 ‘임산부 등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에 생식독성물질 취급 업무를 포함하도록 하고, 임산부의 비자발적 야간근로를 막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70조 제2항의 ‘야간근로 인가 대상’에서 임신 중인 여성을 제외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위와 같은 구체적인 대책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근로자가 생식독성물질의 위험성과 자신이 업무상 취급하는 물질 중 생식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생식독성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근무하는 근로자가 있을 것이다. ILO 화학물질협약 제1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작업장 내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갖는 유해성에 대해 근로자에게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우리 산업안전보건법령 역시 작업장 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위험 경고, 취급 근로자 안전보건교육 등에 관한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여, 근로자가 작업장 내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훈련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92조의6).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령은 근로자가 안전보건 관련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나 사업주의 제공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근로자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이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등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더라도, 사업주가 영업 비밀 등을 이유로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가 작업장 내 유해인자로부터 자신의 안전, 건강을 보호하고, 재해 발생 시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작업장 내 안전보건 자료를 열람하고 자료의 제공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에 국가인원위원회는 최근 결정에서 사업장 안전보건 자료에 대한 근로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자료의 열람, 제공에 대한 근거규정을 정비하도록 권고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불임, 유산, 선천성 장애아 출산에 대한 사업주와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권고대로 법과 제도가 개선되는 것과 더불어 생식건강 유해인자로부터 근로자와 그 자녀의 건강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도 확산되기를 바란다.

 

<윤미영 변호사 프로필>

- 제5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수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 역임
-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조정위원 역임
- 대한변호사협회 산재소송실무 강의
- 現) 법무법인 사람 대표변호사
- 現)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산재 전문 변호사
- 現) 수협중앙회 공제분쟁 심의위원
- 現)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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