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희망이다] 육아를 힘들게 하는 말.말.말.
[아이가 희망이다] 육아를 힘들게 하는 말.말.말.
  • 송지나 기자
  • 승인 2018.07.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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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인구보건복지협회 인구전략실장

<82년생 김지영>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공원벤치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옆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맘충팔자가 상팔자야.”

공원에 나온 남자들이 김지영을 보면서 한 말이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한순간 ‘맘충’으로 되어버린다. 벌어주는 돈으로 애나 보면서 노는 여자에 그치지 않고 벌레에 비견되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간주된다.

물론 이것은 픽션이다. 그런데 이것을 소설 속 주인공이 한 순간에 우연히 겪은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까.

관련하여 최근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왔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지난 5-6월 두 달간 ‘육아를 힘들게 하는 말말말’ 국민참여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수집된 2000여개의 말들을 보면 우리사회 육아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다름 아닌 여성에게 ‘육아 책임’을 전가하면서 정작 ‘아이 돌봄’(육아)의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벤트 참여자들 다수가 언급한 말들은 주로 남성은 일(집밖), 여성은 육아와 가사(집안)라는 성별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다. 예컨대 ‘남자가 무슨 애를 봐,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애를 어떻게 봤길래 애가 다쳐, 애 엄마는 뭐 하는데‘ 같은 말들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애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엄마 몫일뿐 육아하는 아빠, 즉 ‘아이 돌봄’의 공동주체로서 남성의 역할과 책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육아하는 여성들을 향한 비하도 강하게 드러난다. ‘유난 떨지 마, 너만 애 키우냐?, ‘애들은 놔 두면 잘 크게 돼 있어‘, ’요즘 같은 세상에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드냐‘, ‘육아가 힘들면 나가서 일하던지’ 같은 말들은 육아를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육아하는 여성의 역할을 가치절하한다.

여기서 육아는 전업주부인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독박육아’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

워킹맘도 차별과 편견에서 예외는 아니다. ‘육아맘들은 정신이 아이들한테 팔려있어서 안 돼’, ‘애가 왜 그렇게 자주 아파?’, ‘나도 칼퇴근 하고 싶다’ 등 이런 말들에서 보듯이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맞벌이부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로 제한하는 인식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격려받지 못하고 있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 엄마라는 경력은 왜 한 줄의 스펙도 되지 않는 걸까?’라는 어느 제품광고의 카피처럼 육아와 가사라는 지난하고 힘든 일이 ‘정당한 노동의 가치’로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비난이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조차도.

가족 안에서, 이웃공동체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무심코 던지는 일상에 내재화 돼 있는 차별과 편견의 언어들이 얼마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을 무력화 시키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육아와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육아가 여성만의 일이 결코 아니며, 육아 책임(주체)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화 안에서만이 비로소 우리가 하는 말들도 바꿔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라는 ‘82년생 김지영’의 넋 나간 독백이, 그리고 인구보건복지협회 이벤트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토로한 ‘육아를 힘들게 하는 말.말.말’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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