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희망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
[아이가 희망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
  • 이진우 기자
  • 승인 2018.04.03 14: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장 특별기고
▲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하나의 생명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양육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농부가 쌀을 추수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기울이는 정성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어른들은 한 톨의 밥알조차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베란다의 활짝 핀 군자란(君子蘭)의 고고하고 빼어난 자태에 왜 군자란이라고 부르는 지 알 것 같다. 아내가 들인 공이 얼마나 대단했을 지 짐작한다. 수시로 이리 저리 볕이 잘 드는 장소로 화분을 옮기고,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았으리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서정주 시인의 시구와 같이, 이렇게 풀 한 포기 기르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자녀를 사람 구실하게끔 양육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부모가 자녀에게 들이는 정성은 가슴이 수 천 번은 내려앉을 정도의 아픔의 끝일 것이다. 필자도 어떻게 두 아들을 길러 결혼까지 시켰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1978년 첫 아이를 낳았을 때만 해도 어느 집이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분만에 한 달치 봉급을 거의 다 써야 했다.

아내가 퇴원하는 날 버스를 타려고 하니 장모님께서 “출산하고 퇴원하는 산모와 아기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니 말이나 되는가?”라고 말하셔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버스 토큰이 없어 출근을 하지 못하게 생겼다. 급한 대로 이웃에게 돈을 빌려 봉급날까지 겨우 버티며 지냈다.

그 다음해 둘째가 태어났다. 연년생으로 낳은 두 아들의 분유를 대는 것조차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분유가 떨어지면 아내는 이웃에게 “깜박 잊고 분유를 사놓지 못했어요”라는 거짓말로 분유를 빌려 먹이고 월급날 갚기도 했다. 이웃에서도 빤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모른 척 속아줬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자녀양육이 녹록치 않았지만 나를 보고 방긋 웃는 아이의 미소를 보면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풀리곤 했다.

지금은 경제 사정이 나아져 자녀의 끼니를 걱정하는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끼니 해결보다 요즘은 결혼하고도 자녀를 낳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는 ‘저출산 문제’가 더 큰 걱정거리다. 엄마가 아기를 돌보면서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거나, 만혼(晩婚)에 따른 불임의 증가, ‘한번뿐인 인생, 나에게 집중하자’는 욜로(YOLO) 유행 등 저출산의 이유가 여럿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 5년차에 이르는 우리나라 부부 중 30% 이상이 아기를 낳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 자녀를 기르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년 전에 한 정부연구기관은 아기를 낳아 대학까지 교육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3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엄청난 비용이 드는 까닭은 사교육비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과외는 필요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도 많다고 한다. 특히 영ㆍ유아기는 모든 뇌가 골고루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지나친 사교육은 오히려 과잉학습장애증후군이나 애착장애 등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다수 연구결과가 입증한 바 있다.

학부모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막상 사교육을 외면하지는 못한다. 다른 아이는 다하는데 내 아이만 하지 않아 경쟁에서 밀려나 소외될까봐 과외를 시킨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ㆍ중ㆍ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7만 1,000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교육비 총 규모도 18조 6,000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사교육 왕국’이라고 할 만 하다.

필자는 자녀 양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과외를 위한 학원 수업에 내몰려 부모와 대화는커녕 얼굴 볼 시간조차 없다.

사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내 아이의 행복’에 있다하더라도 단지 부모의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방편으로 아이를 사교육 현장에 내몰지 말았으면 한다.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은 자녀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

옆집 아이는 하는데 우리 아이는 시켜줄 수 없다며 부모의 능력을 비관할 필요도 없다. 부모의 믿음과 응원이 있다면 아이는 행복하다. 자녀를 한 인격체로 꽃 피우기 위해 온 정성을 쏟는 일이 사교육이 된다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미래의 알 수 없는 행복을 좇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