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인생에서 실망과 삶의 주도권
[변요한목사 시론] 인생에서 실망과 삶의 주도권
  • 임지영 기자
  • 승인 2026.0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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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누가복음 24:15~16)

테레사 수녀의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서 수상 소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 중에도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고받는 미소 중에도 계십니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가 이 연설을 하기 3개월 전에 영적 지도자인 ‘마이클 반 데르 피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침묵과 공허함이 가득합니다. 눈을 뜨고도 그분을 보지 못하고, 귀를 열어 듣고자 하나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하고자 혀를 움직이지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믿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 마음 깊은 곳 거기엔 온통 공허와 어둠뿐입니다. 제 안에는 해답 없는 의문이 너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두 고백에서 ‘테레사 수녀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둘 다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요? 최고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영혼의 밤이 있고 흔들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실패 속에 믿음이 흔들릴 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들은 사람조차도 이를 믿지 못하고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누가복음 24:13)

주님의 제자 중에 글로바와 또 다른 한 명이 그것도 주일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엠마오의 길을 “슬픈 빛을 띠고”(누가복음 24:17) 축 처진 어깨로 맥없이 ‘실패자’의 모습으로 낙향(落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누가복음 24: 15)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누가복음 24:14)처럼 이틀 전 십자가 이야기, 엠마오로 가던 그날 새벽에 여인들에게 들었던 부활 이야기, 그동안 예수님께 듣고 보았던 말씀과 기적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심지어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자신들 가까이 동행하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도 늘 예수님 이야기를 합니다. 십자가도, 부활도 이야기하고 들었던 말씀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합니다. 신앙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 보이고 못 느낄 수도 있지요. 테레사 수녀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왜일까요? 그리고 제자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누가복음 24:16) 그렇다면 그들이 눈이 나빠서일까요? 아니지요. 무엇인가에 가려져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큰 실망, 깊은 상심, 그리고 절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생 역전이 될 줄 믿었는데, 예수님이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를 뒤엎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줄 알았는데,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슬픔과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와 예수님이 곁에 계시는데도 보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영적 맹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 예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나사렛 예수, 선지자”(누가복음 24:19)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기대대로 해주지 않자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고 사랑한다고 했으면서도, 이제는 한없이 실망스러운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았다고 했는데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판단만 믿고 제자들이 모인 그 자리마저 박차고 떠났습니다.

이는 자기 생각만이 진리이기에, 자신의 틀을 절대 깨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자의 모습처럼, 불평합니다. 한탄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제자들과 계속 동행하시며,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날이 저물자 같은 숙소에 묵으시면서 축복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지사(took) 축사하시고(blessed) 떼어(broke) 주시니(gave)”(누가복음 24:30)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죽었다고 끝이 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지금 너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니다. 내가 다시 일어나게 하리라’를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길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두 제자가 예수님임을 깨닫게 된 것은 “눈이 밝아져”서입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누가복음 24:30~31)

그러므로 믿음은 내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선물이기에 주님께서 내 인생에 주도권을 잡으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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