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최종 부결된 노란봉투법은 어떤 내용이었나
[사람과 법률] 최종 부결된 노란봉투법은 어떤 내용이었나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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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우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이지우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지난 11월 초, 출근을 위해 5호선 양평역에 내리자마자 귀를 울리는 확성기 소리에 여느 때와는 다른 출근길이 됐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많은 시위자가 민주노총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노동자 인권보장을 외치고 있었다. ‘노동자 인권보장’,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을 보자니 순간 ‘노란봉투법’이 떠올랐다.

‘노란봉투법’이란 불법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법이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불법파업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불법한 것인데, 불법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체 왜 제한하려고 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09년에 있었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77일간 총파업을 단행했다. 파업이 종료된 이후, 쌍용자동차는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으로 인해 회사에 100억원대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2013. 11. 29.자 2010가합5252).

이 소송에서 법원은 노동조합에게 약 33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금 약 13억원을 합해 각 약 47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됐다.

‘노란봉투법’은 이처럼 노조원 1명이 파업으로 인해 수십억원대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 자체는 한 시민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위해 4만7000원의 모금액을 노란봉투에 담아 보낸 것에서 착안했다.

그렇다면 법원은 왜 노조원 1명당 47억원이라는 큰 액수를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 걸까?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적법한 노동쟁의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

적법한 노동쟁의의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직 불법한 노동쟁의만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2조는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이하 ’노동관계 당사자‘라 한다)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문제가 아닌 기타의 문제로 파업을 하게 될 경우, 설령 그것이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한 노동쟁의가 된다. 예컨대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를 문제 삼아 파업에 이르게 된다면, 이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문제가 아니므로 불법한 노동쟁의가 되어 노조원들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노란봉투법은 적법한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장시켜 노동자가 손해배상에 대한 부담 없이 헌법상 노동3권을 더욱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의 경우 부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점

수인이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연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민법 제760조 제1항). 판례 및 통설은 여기서의 ‘연대하여’를 부진정연대채무로 보고 있다.

부진정연대채무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2명이 10억원의 채무를 공동으로 발생시킨 경우, 10억의 2분의 1인 5억원이 아니라 전체 채무 10억원씩을 각각 부담하는 방식이다. 전체 손해는 10억원인데 둘이서 각자 10억원씩 부담한다니, 손해보다 2배나 많은 20억원을 부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채권자의 채권 확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채권자가 누구에게나 채무 전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 1인에게 10억원 전액을 받아냈다면, 이로써 채권의 만족을 얻어 다른 채무자 1인에게는 더이상 채권을 청구할 수 없다. 채무자 1인은 억울하게 나머지 채무자의 몫까지 다 지불하게 됐으므로, 억울하게 지불한 5억원은 나머지 채무자 1인에게 다시 청구할 수 있다.

이같은 제도로 인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국가 및 사측에 발생한 손해배상금 총 47억원을 각각 부담하는 형식이 됐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47억원의 N분의 1씩을 부담하는 형태지만, 부진정연대채무의 특성상 국가 및 쌍용자동차가 노조원 1인에게 47억원 전부를 청구한다 하더라도 노조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의 경우에만 특별히 예외를 둬 노조원들의 채무를 부진정연대채무가 아닌 과실률에 따른 개별채무로 변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쌍용자동차 사태에 바로 적용하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각 47억원이 아닌 과실률에 따른 개별적인 채무 금액을 부담하게 된다.

이 외에도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확장해 하청노동자가 원청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노동쟁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노동쟁의 시 신원보증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 등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제정됐다면 사측으로부터의 심리적 압박 없이 노동자들이 더욱 자유로이 노동쟁의를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민법의 특별법격으로 노동쟁의의 경우에만 부진정연대채무의 예외를 인정한다는 점, 노동쟁의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손해를 온전히 사측이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사측의 손해가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 등의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이러한 노란봉투법은 지난 11월 9일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12월 1일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을 진행했으나 재의결 정족수인 3분의 2 이상 찬성 기준을 넘지 못해 최종 부결됐다.

노란봉투법이 재의결을 통해 가결되어 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에 힘을 실어 줄지, 아니면 부결되어 사측의 원활하고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해 줄지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관심이 주목됐으나 현실적으로 국회 야당 의원을 다 합하더라도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을 넘지는 못하므로, 노란봉투법의 최종 부결은 예상된 부분이었다.

 

<이지우 변호사 프로필>
-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우등졸업
-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
- 現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 모의공정거래위원회 경연대회 우수상
- 언론중재위원회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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