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률] 8촌 이내 혈족 간 결혼 금지지만 무효는 아닌 이유
[사람과 법률] 8촌 이내 혈족 간 결혼 금지지만 무효는 아닌 이유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3.06.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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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재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배성재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ENA와 SBS 플러스의 방송프로그램 ‘나는 솔로’는 일반인이 출연하여 연인을 찾는 짝짓기 예능이다. ‘나는 솔로’ 제11기에서는 짝짓기 예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한 남자 출연자가 첫인상 선택 때 여성 출연자 한 명이 자신의 육촌 누나임을 알아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첫인상 선택을 한 다음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여성 출연자는 자기소개를 끝낼 때까지 남성 출연자가 자신의 친척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남성 출연자가 자신의 실명을 밝히면서 누구인지 모르겠냐고 물어본 후에야 여성 출연자는 육촌 동생을 알아보고 매우 당황했다. 남성 출연자의 아버지와 여성 출연자의 아버지가 사촌이고, 두 출연자가 상당 기간 왕래가 없었기에 여성 출연자가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혈족은 직계혈족(자녀, 부모 등)과 방계혈족(형제자매, 삼촌, 조카 등)으로 구성되며 결혼으로 인하여 맺어지는 친척 관계인 인척과 구분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8촌 이내 혈족인 경우 결혼할 수 없으며(민법 제809조 제1항), 8촌 이내 혈족 간 결혼할 경우 무효이다(민법 제815조 제2호). 6촌 관계인 두 사람이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만나다가 결혼한 이후 친척 관계임을 알게 되었다면 그 결혼은 법률상 무효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2년 하반기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결혼(이하 ‘근친혼’이라 함)을 금지하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근친혼이 무효라는 민법 제815조 제2호는 헌법에 어긋나므로 2024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지 않을 경우 그 효력이 상실된다는 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2022.10.27.선고 2018헌바115 결정). 왜 헌법재판소는 근친혼이 금지되어야 한다면서 무효는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근친혼을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관의 9명 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으로 보았다. 해당 규정을 합헌으로 보는 의견은 근친혼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가까운 혈족 사이의 관계 및 지위에 관련된 혼란을 막고,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혼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친척이나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현재에도 8촌 이내 혈족을 가까운 친척으로 보는 사고가 보편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비록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결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가 넓지만 국가마다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이를 단순비교 해서는 안 되며,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해 얻는 공적 이익이 매우 중요하므로 근친혼 금지 규정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는 의견은 근친상간을 인류 보편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 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합헌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결혼을 막아야 하는 근친의 범위에 대해 이견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8촌 이내 혈족을 가까운 친척으로 여긴다는 사고가 보편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누가 친척인지 알려주는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촌수가 먼 친척은 존재 자체도 알기 어렵다고 본다.

이에 더해 합헌 의견과 달리 여러 나라에서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의 범위를 우리나라보다 좁게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각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라고 본다.

결국,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는 의견은 8촌 이내 혈족이라는 근친혼 금지 규정의 적용 범위가 특별한 근거 없이 너무 넓어 각 개인의 결혼할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결혼을 금지해야 할 만큼 가까운 친척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는 입법자 즉 국회가 정할 일이라고 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근친혼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결혼을 무효로 보는 규정에 대해서는 헌법재판관 전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의 무효와 취소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결혼 당사자가 아닌 이해관계인도 결혼의 무효를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지만 취소 사유가 있는 결혼은 취소 청구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그리고 무효인 결혼은 처음부터 결혼 자체가 성립하지 않지만 취소 사유가 있는 결혼은 일단 성립하면 취소할 때까지 유효하다. 무효인 결혼 당사자에서 태어난 자녀는 혼외자가 되어 아버지와 자녀 간 친자 관계가 인정되지 않지만 결혼이 취소되기 전 태어난 자녀는 친자 관계가 유지된다.

근친혼을 무효로 보는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8촌 이내 혈족이라 하더라도 이미 자녀를 낳았거나 부부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등 가족 공동체로 볼 수 있는데도 결혼을 무효로 하면 가족의 해체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가족 제도의 유지라는 근친혼 금지 규정의 목적에 반한다.

또한 결혼 이후에 8촌 이내 혈족임을 알게 되면 이해관계인은 언제든지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이는 결혼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

직계혈족이나 형제자매와 같이 가족 제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의 근친혼만 무효로 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취소로 하여도 근친혼 금지 규정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근친혼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규정은 헌법에 어긋난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현재 국회에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2022년 11월 10일 제출됐다. 개정안은 근친혼 금지 규정은 그대로 두되, 근친혼 금지 규정 위반 시 무효가 아닌 취소로 하고 근친혼임을 안 날로부터 6월, 결혼한 날로부터 2년을 지나면 더이상 취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3년 5월 16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개정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직계혈족이나 형제자매와 같이 가족 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근친혼까지도 당사자 혹은 이해관계인이 취소하기 전까지는 유효하고, 근친 간 혼인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6월, 결혼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나면 더이상 결혼을 취소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가족 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근친의 범위를 별도로 정하여 무효인 근친혼과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근친혼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친혼 금지 규정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면, 근친혼 금지 규정의 필요성 자체에는 전반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친혼의 효력을 무효와 취소로 나눠 봐야 한다는 견해도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다만 근친의 범위에 대하여 과거와 달리 가까운 가족의 개념이 달라졌으므로 8촌 이내 혈족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견해와 여전히 8촌 이내 혈족은 근친이라고 보는 게 여전히 사회 통념이라는 견해가 대립한다.

우리나라 사회 구성원의 여론이 근친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가 이러한 견해 대립의 핵심이므로 이에 대하여 공청회 등 여러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한 후 근친혼 금지 및 효력 규정을 신중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배성재 변호사 프로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 경제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
- 現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변호사
- 서울동부지방법원 실무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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