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경쟁력 키워드 ‘순환경제’...나아갈 방향은?
미래 경쟁력 키워드 ‘순환경제’...나아갈 방향은?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6.1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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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환경 문제 아냐...신성장동력·자원안보 관점 필요”
순환경제 생태계, 정부 역할은...네덜란드 사례 ‘관심’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커버를 만든 럭셔리 전구 제품. (사진=시그니파이코리아 제공)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커버를 만든 럭셔리 전구 제품. (사진=시그니파이코리아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순환경제’라는 말이 있다. 생산에서부터 소비, 폐기로 끝나버리는 ‘선형 경제’가 아니라 ‘생산-소비-관리-재생’의 단계를 거쳐 폐기물 없이 자원이 순환하도록 하는 경제를 말한다. 이러한 ‘원형’ 생태계는 지난 1971년 미국의 식물학자 베리 코모너의 저서 ‘원은 닫혀야 한다(The Closing Circle)’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1987년 세계환경발전위원회에서 처음 제시돼 우리에게 더 익숙한 용어인 ‘지속가능한 발전’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의 필요충족 능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발전을 말하는데, 순환경제는 누적되는 폐기 자원을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순환경제는 최근 국내 부처에서도 화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코엑스에서 ‘제1회 순환경제 산업대전’을 개최하고 105개 기업이 참가한 순환경제 전시관을 운영했다. 또한 같은 달 산자부와 환경부는 공동으로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발표하며 생활 플라스틱 분야에서 기존 석유계 플라스틱을 오는 2050년까지 순수바이오 플라스틱으로 100%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산자부 주관으로 ‘순환경제 신사업 발굴 및 기업역량 강화 지원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순환경제를 향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지난 9일 국회에서 ‘순환경제와 미래산업’이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국회미래연구원과 이학영, 박대출 의원실에서 주최한 이번 포럼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과 협력해 한국과 네덜란드의 중장기 전환 시나리오를 알아보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9일 진행된 포럼에서 영상을 통해 발언하고 있는 아나우트 파스니어 순환경제 국제전략 고문. (사진=황예찬 기자)
9일 진행된 포럼에서 영상을 통해 발언하고 있는 아나우트 파스니어 순환경제 국제전략 고문. (사진=황예찬 기자)

◆ 정부, 방향 제시뿐 아니라 ‘새로운 표준’ 장려해야

네덜란드는 2050년까지 ‘넷 제로’를 실현하고 100% 순환경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네덜란드가 설계한 순환경제 구조의 핵심은 유기적인 연결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의 행동이 순환경제라는 키워드로 연결돼 있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 유기적으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다.

네덜란드 인프라 및 수자원관리부 아나우트 파스니어 순환경제 국제전략 고문은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자원을 사용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의 행동과도 연관돼 있다”며 “순환경제 정책은 항상 일종의 시스템 기반 접근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바이오매스와 식품, 플라스틱, 제조업, 건설, 소비재 등 크게 5가지 분야에 대한 정책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스니어 고문은 “단순히 경제 순환의 고리를 닫기 위한 과정을 가속화하는 데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니”라며 정부의 역할이 단순히 시장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스니어 고문은 “정부는 시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이러한 변화가 기업가 정신의 새로운 표준이 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연결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가 기준을 높이고 영향력을 입증하도록 북돋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 TNO의 에스더 존데르반 순환플라스틱 클러스터장은 “순환경제 실현을 위해 앞으로 화학업계와 분류·재활용 업체 간 긴밀한 협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학산업에서는 공급원료를 확보해야 하는데 폐기물에서 공급원료를 얻는 것이 원료를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존데르반 클러스터장은 “몇몇 화학기업이 분류·재활용 업체를 인수할 수도 있다”며 “실제로 이러한 협력을 통해 업계가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아울러 폐기물에 따라 특정 분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존데르반 클러스터장은 “기계적 재활용은 시장의 필요에 따라 고품질 또는 저품질로 재활용할 수 있고, 열화학 재활용 등 화학적 재활용을 위한 분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TNO에서 활용하고 있는 열분해 방식이 친환경적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TNO의 열분해는 일반 열분해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진행한다”며 “일종의 기화 과정이지만 일반적으로 기화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배출하지 않고 단분자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TNO는 현재 이 기술을 실증 플랜트로 확장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순환경제와 미래산업'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순환경제와 미래산업'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 순환경제, 신성장동력 활용하려면...“인센티브, 인식 개선 필요”

한편 국내 전문가들은 정부가 양적 재활용 목표에 치중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더 넓은 관점에서 순환경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은 “최근 국내에서도 순환경제를 환경적인 분야, 폐기물 관리 차원에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탄소중립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전략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면서도 “신성장동력과 자원 안보 관점에서의 정책은 아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용철 충남대 교수는 “그동안 플라스틱과 관련해 많은 자원재활용 정책이 있었고, 실제로 지난 40년간 재활용률이 많이 늘었다. 최근에는 페트병이 무색으로 전환되고 투명 페트병은 라벨을 떼서 분리 배출하는 노력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아직 플라스틱 감량이나 발생 억제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국내 폐합성수지류 배출은 연간 1000만톤 이상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실제로 순환계 영역으로 돌아오는 실질 재활용률은 13.5%로 굉장히 낮다”면서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상대적으로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양적 재활용 목표 제시에 치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종혁 SK지오센트릭 상무. (사진=황예찬 기자)
이종혁 SK지오센트릭 상무. (사진=황예찬 기자)

기업 현장 일선의 목소리도 비슷한 결을 유지했다. 이종혁 SK지오센트릭 상무는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내 재활용 산업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 상무는 “열분해의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제조부터 소각까지의 플라스틱 전 생애 주기를 고려하면 열분해로 만드는 재생 플라스틱이 새로 만드는 플라스틱보다 에너지 소모가 적다”고 설명했다.

또한 “폐기물을 다루는 사업이라고 생각해 지자체가 사업장을 꺼리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외부에서 전처리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제조업이나 다름없다”며 “화학적 재활용 사업은 환경사업이 아닌 혁신 제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용남 시그니파이 코리아 대표는 “똑같은 제품이라도 유럽에서는 순환경제를 통해 만들어내면 소비자가 두 배의 가격을 주고서라도 사지만 한국에서는 10%만 비싸도 구매하지 않는다”며 “정부에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최종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에게는 제품을 구매했을 때 사회적으로 기여했다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한다”고 제안했다.

김준형 하이네켄 코리아 CSR 스페셜리스트 역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오히려 친환경 제품 생산을 선택하는 게 이익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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