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권미경 칼럼] 건강한 삶을 위한 보건교사의 역할
[보건교사 권미경 칼럼] 건강한 삶을 위한 보건교사의 역할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9.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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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척초등학교 권미경 보건교사
서울고척초등학교 권미경 보건교사

학교 안에서 보건교사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학생들에게 그리고 동료 교원들에게 보건교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보건교사가 한 학교에서 교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정성을 요하는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보건교사들도 지쳤다. 바야흐로 ‘무기력의 시대’가 우리의 삶 전체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가 선사하는 경험을 단지 지식에만 초점을 맞춰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무기력하다. 그리고 보건교사들도 아이들만큼 무기력하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오늘 하루, 한 달, 한 학기와 1년이 마무리되기만을 바란다.

공존과 공동체적 배려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 멀어진 듯 보인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친구에 대한 따뜻한 마음씨와 양보, 협동, 협력 등의 가치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치됐다.

서로 어울려 배우는 이러한 가치들은 거리두기와 개인위생 강조에 밀려, 친구들과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라는 옛말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백지장 정도는 혼자서 드는 것이 낫다’로 바뀌었다.

여기서 학교의 교사들은 이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하는 통제자로 둔갑하며, 보건교사도 그 일원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이 서로 부둥켜 노는 것을 막아야 하고, 책상을 띄엄띄엄 배치해야 하고, 급식실에서는 서로 대화할 수 없도록 하며, 혹여 감기 증상 비슷한 학생이 있다면 학교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사명을 다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 보건실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보건교사를 찾는다. 어느 날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라며 한 아이가 보건실을 찾아왔다. 그 아이를 보며 ‘아직 한글을 알지 못하는 3학년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얘가 코로나 환자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것저것 문진도 해보고 아침도 먹었냐고 물어보고 나서 아침을 안 먹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핫초코 한 잔을 타 주었다. 뜨거우니 후후 불어서 먹으라고 말하고 나서 그 아이를 더 살펴볼 여유도 없이 또 다른 학생을 살펴야 했다.

많은 학생은 보건교사가 자신의 어려움을 살펴봐 주길 원할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공감해주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건교사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업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과중한 업무가 새삼 보건교사만의 일이 아닐 텐데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습 결손이 생겼다고 위에서는 학생들이 학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주문을 해오고 있고, 학생들의 온라인 사용량이 늘어나 각종 유해 매체(미디어)에 노출되어 범죄가 양산되고 있으며, 학생들의 자살률 또한 증가 추세에 있다.

사실 보건교사의 과다한 업무량보다 이런 문제들이 더 시급하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갓 들어간 것 같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더 치고 나가려면 우리 아이들이 미래 시민으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더욱 단속하고 교육하며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

다만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든다. 코로나로 인한 어른들의 많은 걱정 속에 아이들의 걱정은 묻혀버린 게 아닐까?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산다고 하면서도 깊이 물어보지 못하고, 업무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에 상심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실상은 사실 이러하다. 극소수의 몇 명을 빼고는 우리 아이들이 졸업 후에 맞을 수 있는 미래는 청년 실업으로의 진입이거나 전망 없는 알바(아르바이트) 인생이다. 이런 시대에 보건교사가 많은 업무로 힘들다고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나는 초등학교에 근무하며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있다. 벌써 소위 똑똑하다고 하는 아이들은 정말 남다르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의 될성부른 나무가 숲을 이루어 나무들이 많아지고 새들과 많은 동물이 살 수 있는 장을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될성부른 나무는 몇 그루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될성부른 나무 몇 그루를 제외한 다른 많은 나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

나무들의 자라는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성장을 위한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도 해줘야 한다. 이 역할의 적임자는 보건교사다. 나무의 자양분이 되고 가지치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최적의 방법은 어떻게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강한 삶’이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건강’의 가치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간 최대의 가치’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건강한 삶의 가치를 가르쳐 삶에 적용되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건교사에 요구되는 시대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건강하다면, 보다 희망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 건강의 가치를 온전히 습득하고 나서야 그다음에 공부하고, 성찰하며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이미 모두 다른 독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굳이 특기를 말하지 않더라도, 어떤 아이는 미래 만화가가 되기 위한 능력이 있고, 어떤 아이는 어려운 나라의 아이들을 고쳐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또 지금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찾지 못해 열심히 찾고 있는 아이도 있다.

성경에서는 선한 목자를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백 마리 양 중에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을 때, 선한 목자는 그 한 마리 양을 찾는다고 말이다.

코로나 시대, 한 명의 아이에게 집중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아이를 찾을 때 아흔아홉 명의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보건교사들이 한 명의 아이에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나머지 아이들이 그 한 명의 아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교사와 함께 연대하여 그 아이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보건교사는 이 한 명의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 한 명의 아이가 오늘 만난 코로나 확진자라고 한다면 도움은 매우 절실해진다. 자신이 코로나 양성반응이었던 사실을 숨겨야 하는 학교가 아니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아이도 나의 친구이고 앞으로도 친구일 것이며,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과정 중에 겪은 감기 같은 일이었다고, 잘 견디고 다시 돌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 고맙다고 할 수 있는 학교가 그리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들로 아이들에게 용기를 보이는 사범(師範)으로서의 보건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보건교사의 용기는 아이들이 있음으로써 생기는 용기가 될 것이며, 학생들과 더불어 상호 상승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한다. ‘나는 어떤 보건교사가 될 것인가? 나는 좋은 보건교사인가?’ 결국 내가 찾은 답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보건교사 말이다.

<권미경 보건교사 프로필>
-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 現 서울고척초등학교 보건교사
- 現 사단법인 GSGT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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