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박은숙 칼럼] 흘러야 할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보건교사 박은숙 칼럼] 흘러야 할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9.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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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여자중학교 보건교사 박은숙
한림여자중학교 박은숙 보건교사

보건교사로 발령받아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근무한 지 몇 해가 됐는지 헤아리며 살지는 않았다. 그러다 올해 여름방학, 교직 입문 동기인 친구가 “학교에 발령받은 지 30년이나 됐네”라며 언급했을 때야 비로소 ‘벌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내왔으며, 어떻게 교직을 마무리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봤다.

처음,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보건교사로 처음 추자도라는 섬 지역에 가게 됐었다. 낯설었던 외딴 섬 지역 환경과 처음 접했던 학교생활은 모든 게 힘들고 버거웠다.

이불 보자기를 싸매고 배를 타러 가는 길, 부두까지는 어머니가 동행해 주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추자도 인근에서 다시 소형배로 갈아타서 예초리항에 도착 후 미니버스를 타고 학교 앞에 내려서 다시 짐을 수레에 싣고 학교로 들어가는 그 자체부터가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제주에 살면서도 중산간에 살았기에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던 파도 소리는 식구들과 떨어져 있던 내게 이국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보건수업 시에는 마땅한 수업자료가 없어서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이었으며, ‘유일한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응급상황과 감염병 관리 등 모든 것을 혼자서 알아내고 처리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방학 때마다 동기 교사와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수업자료를 만들었고, 다양한 사건 사고의 상황에서도 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었다.

그 시절 가장 어려웠던 건 추자도에는 수돗물이 없어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먹었었는데, 가끔 그 안에 소독약(염소)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소독약의 용량과 횟수를 정확히 알려주는 곳도 없었고, 지침도 없어서 너무나 난감해하면서도 약통에 쓰인 사용설명서 하나에 의지해 “이 정도면 맞겠지?”라며 나름의 기준으로 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는 식수에 대한 소독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다.

궁핍했던 시간들이 모여

궁핍하고 부족했던 시간과 경험들이 쌓여 자료를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제작 욕구의 방향은 제일 급했던 5·6학년 보건교육 수업자료였다. 해당 자료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자료를 만든 김에 수업 발표에 나서기도 했었다.

수업 발표 한 시간을 준비하면서 동료 교사의 수업을 수없이 참관했다. 또 내 수업을 보여주며 지도 조언을 받고 다시 수업을 재구성해 시도하고, 지도안과 학습지를 고치고 또 고쳤었다. 돌이켜보면 혼자서는 못했을 일이었고 친구와 동료들이 옆에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수업자료 제작과 관련해서는 중학교용 성교육 장학자료 및 아동 비만줄이기 사업 소책자 개발, 메르스 예방 교육자료 및 학생 건강증진 교수학습 자료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건업무 및 응급처치 등과 관련해 학교에서 보건교사 한 사람만의 판단과 결정은 자칫 실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나 역시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건이 있다. 체육수업 시간 중 앞구르기를 하다가 한 학생이 목이 아프다며 보건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교 전 한 번 더 살피고 체크를 하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학생이 조금 더 빨리 치료를 받고 회복될 수 있었을 텐데, 나의 미숙함이 한 아이의 고통을 가중시킨 결과를 만들게 되어 마음의 무거움이 오래 지속됐었다.

반면 뿌듯한 기억들도 있다. 점심시간 한 아이가 밥을 먹다가 급식실에서 쓰러졌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나는 재빠르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다행히 아이는 별 탈 없이 회복됐다. 이론으로만 수없이 들었던 심폐소생술이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그 과정이 뇌리에 박혀 있었고, 급박했던 상황에서도 차분히 그 과정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사례를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전문가 자리를 굳히듯 보건교사인 우리 역시 학교 현장에서 수업과 보건업무, 응급처치 등에 관해 연구하고 성찰하고 새로 만들어 적용하면서 전문가의 자리로 자리매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오는 변화의 바람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을 알렸던 코로나19로 교육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당연했던 대면 수업이 어려워졌으며 학생들의 등교도 당연한 것이 되지 못했다.

올해 9월 우리 학교에서도 코로나19 확진 학생이 발생했다. 학기 초에 미리 준비해둔 역학조사 관련 기초조사 자료가 있어서 교육청과 보건소에 관련 자료를 바로 넘겨줄 수 있었다.

또 감염병 관리체계에 따른 업무분장이 구분되어 있어 팀별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사전 연수에 따른 준비로 선생님들의 업무수행 처리능력도 남달랐다. 학사 관련 안내, 학생 생활지도 안내, 수업 준비에 따른 원격수업 준비를 모든 선생님의 협업으로 이루어냈다.

이에 더해 서로 챙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원격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들을 조금 더 아는 선생님이 먼저 안내를 해주셨고, 이런저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도 “제가 도울 게 없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되는 부분은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라며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가 학교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교실 수업에서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보건업무를 처리하면서 학생 지도에서 특히 달라졌던 부분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2019년까지 시행해오던 ‘혼디걸으멍 와바(제주도교육청 주관 사업, 아침밥 먹고 친구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기)’ 사업을 어떤 행태로 운영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모학교에서 시도해보고자 하는 운영방안을 접하게 됐다.

기존에는 학생이 친구와 함께 걷고 그 기록을 지도교사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운동 방법이었는데, 이를 온라인으로 적용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걷기 방법을 완전히 전환하여 혼자서 아무 때나 편안한 시간과 편안한 장소에서 걷고 결과 확인도 본인이 스스로 하는, 개인 간 거리두기도 유지하면서 건강실천을 유지할 방법이었다.

모든 게 낯설어서 한 단계 한 단계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료인 체육 교사의 도움으로 개인 이메일계정 작업에서부터 시작하여 클래스룸에 ‘혼디걸으멍 와바’ 플랫폼을 만들었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운동하면서 기록은 온라인상에 스스로 업로드하도록 했다.

2020년 이 방법으로 운영을 시작했으며, 올해는 지난해 운영을 발판삼아 조금 더 완화된 규칙을 적용하고 회기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자기건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교직생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사람도 그렇고, 우주 만물도 그 자리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듯하나 내면에서는 무수히 많은 변화가 있다. 흘러가야 하는 방향으로, 신의 뜻대로 움직여져 갈 수 있도록 내 몸과 마음을 살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성장하면서 개인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영역보다는 서로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초임 시절부터 친구와 동료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리고 내 곁에 늘 학생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설 수 있었으니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특히 일이 미숙하여 업무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학생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지 못하고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지 못한 때가 많았다.

“무슨 일 있었니?” “우리 00은 무슨 생각을 자주 하니?” 아이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 얘기하게 하고, 그들의 감정을 다독여주고 우뚝 설 수 있도록 더 촘촘히 살펴 그들이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건강하게 걸어 나갔으면 한다.

 

<박은숙 보건교사 프로필>
교육대학원 교육행정 석사
- 現 제주 한림여자중학교 보건교사
- 現 제주특별자치도보건교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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