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갑질’에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 무산 위기
LH ‘갑질’에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 무산 위기
  • 채민석 전문기자
  • 승인 2020.12.0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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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놓고 하도급업체와 ‘갈등’…주택공급 확대에 ‘찬물’
올해 처음 ‘연간단가 계약’ 도입해 애초부터 단가 ‘무리수’

[베이비타임즈=채민석 전문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에 ‘갑질’을 하다가 착공조차 못 한 채 사업 무산 위기를 맞고 있다.

LH는 서울권역 5개 공구에 대해 사실상 신축공사임에도 ‘리모델링공사 연간단가’ 입찰공고를 내 리모델링 공사처럼 위장하고, 공사 추정가격도 지난해 대비 15% 정도 낮게 제시함으로써 부실공사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LH는 특히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 연간단가’의 발주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시인하면서도 공사비 조정 등 시정조치는커녕 책임을 계약 업체들에게 떠넘겨 비판을 받고 있다.

급등하는 주택가격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주택공급 확대정책을 펴는 정부와 정반대로 LH는 공사 계약 업체들과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공급 물량 확대에 찬물을 끼얹는 양상이다.

4일 LH와 공공리모델링공사 계약 건설업체에 따르면 LH는 지난 2월 7~11일 ‘2020~21년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 연간단가(서울권역)’ 5개 공구에 대해 각각 공사 추정가격 약 93억원을 제시하고 입찰을 받았다.

LH는 개찰 결과 제시된 공사 추정가격 대비 15% 정도 낮은 80억원대를 써낸 업체들과 지난 3월 23일 각각 낙찰 금액 대비 15%의 공사이행을 위한 계약보증금을 받고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공사금액으로 계약 체결된 80억원대 공사비는 지난해 LH가 주택 호별로 발주한 평균공사 단가 대비 약 30% 깎인 금액이다.

LH가 올해 공공리모델링(사실상 신축) 공사를 연면적당 단가계약(연간단가) 형식으로 처음 시행하면서 지난해 평균 공사비 대비 15% 후려쳐 예정가격을 제시했고, 이 가격을 기준으로 업체들이 15% 정도 낮은 가격에 입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사비가 30% 정도 낮게 책정된 것이다.

LH가 서울권역에서 시행하는 리모델링공사 5개 공구에서 공사를 맡겠다고 나서 낙찰을 받은 업체는 1~4공구에서 공구당 3개 업체, 5공구 2개 업체 등 총 14개 중소형 건설회사다.

LH는 서울지역에 다가구주택을 짓는 이번 공사를 통해 내년 말까지 서울에 약 1000개 세대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도급업체와 갈등으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H로부터 공사 낙찰을 받은 하도급 건설업체가 공사를 중단하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뒤 3개월 정도 지난 올 6월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설계도면이 배포되면서부터다.

내역입찰이 아닌 총액입찰로 진행된 연간단가 방식의 계약 체결이어서 구체적인 설계내역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던 도급 건설업체들은 설계도면을 받아보고 나서야 철근 등 아이템별 물량에 편차가 크고 공사금액 산정이 크게 잘못된 사실을 알게 됐다.

또 LH가 서울과 지방의 공사단가가 다른데도 전국 평균 공사금액을 기준으로 연간단가를 일률적으로 삭감해 산정하다 보니 서울권역에서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은 수지타산조차 해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에 서울권역 1~4공구 공사를 수주한 12개 업체는 배포된 설계도면에 맞는 물량을 산출해 공사비를 조정해 주든가, 아니면 연간단가 산정 시 반영한 아이템별 물량에 맞는 설계도면을 다시 줄 때까지 공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LH에 통보했다.

LH가 배포한 설계도면대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면 예상비용을 넘어서게 돼 공사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번 공사를 낙찰받은 A업체 관계자는 “물량 산출 결과 입찰 후 배포된 설계도면과 입찰 당시 설계 내역의 항목이 다르고 수량도 현저히 적은데다, 각 지역 및 현장 간 공사비 편차도 심해 설계도면에 맞게 설계변경이 선행되지 않는 한 손해 보는 공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손해가 예상되는 뻔한 상황에서 설계변경이나 설계도면에 맞는 공사비 조정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연간단가의 개념은 리모델링이나 단순 납품 공사에 적용되는 것으로, 신축공사에는 적용할 수 없는데도 LH가 이번 ‘공공리모델링 건설공사’를 연간단가 방식으로 추진한 것은 처음부터 사업 기획을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올해 이 공사를 추진하면서 작년 전체 발주금액 평균을 기준으로 일괄 발주한 것이고, 입찰공고 시 제시한 내용대로 총액입찰로 해 연간단가 방식으로 계약 체결했으므로 발주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해서 (계약 조건을) 바꿀 수는 없다”며 하도급업체들의 공사비 조정 요구를 거부했다.

LH가 작년 공사발주 금액의 평균 기준에서 일괄 하향 조정해 연면적당 단가로 공사 예정가격을 산정함으로써 처음부터 해당 사업의 기획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공사비 조정이나 설계변경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LH가 추진해온 서울권역 5개 공구 가운데 5공구를 수주한 2개 업체만 공사를 진행하고 나머지 1~4공구 12개 업체는 공사를 중단하고 더이상 진행하지 않는 상태다.

서울권역에서 공사비 산정 문제로 대부분의 하도급업체가 공사를 중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기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몇몇 공구에서도 설계도면을 살펴본 결과 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LH 관계자는 “공사비용을 연간단가로 산정한 것은 내부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결과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종결처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업체들과 조율 중이며, 만약 공사이행 계약이 계속 지켜지지 않으면 계약해지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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