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을 만한 아이들’은 없어요”…‘징계권 삭제’ 한 목소리
“ ‘맞을 만한 아이들’은 없어요”…‘징계권 삭제’ 한 목소리
  • 김은교 기자
  • 승인 2020.01.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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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단체 3곳·정의당, ‘징계권 삭제’ 기자회견 열어
“징계권 허용하면서 아동학대 근절? ‘어불성설’ ”

[베이비타임즈=김은교 기자] “맞을 만 했네”, “아이들은 맞으면서 크는거야”……

대한민국은 지금껏 ‘사랑의 매’를 빙자, 가정에서조차 다양한 형태의 ‘훈육성 폭력’이 용인돼 온 사회였다. 그렇다면 정말, 아이들은 맞으면서 크는 것이 당연할까? 그리고 ‘맞아도 되는 사람’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최근, 가정 내 체벌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훈육을 전제로한 체벌이 심하게는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내 주요 아동단체 3곳(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 및 정의당은 13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권자의 징계권 즉 ‘민법 915조’의 삭제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13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열린 민법 제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김은교 기자)
13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열린 민법 제915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김은교 기자)

◇ ‘폭력’을 ‘훈육’으로 정당화…징계권 삭제 촉구

현재 민법 915조에 따르면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아동단체 및 시민사회 등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자녀에 대한 폭력이 ‘훈육 과정의 징계’라는 명목 하에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당 법은 1958년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다.

정부 역시 지난 2019년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징계권’이라는 용어를 ‘권위적 표현’이라 지적한 바 있다. 해당 표현이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도구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다.

이에 3개 아동단체는 같은 해 9월부터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현재 시민 3만 2천 여명이 지지 서명에 참여했으며 아동·부모·법률 단체 109 곳 역시 뜻을 같이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빠른 시일 안에 민법 915조 징계권이 삭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징계권 조항 전면 폐지’와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일관해 왔다. 친권자의 징계권에는 체벌권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법무부 측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해당 사안 관련 부처 간 협의는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이후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이뤄지기 시작했다.

아동 대표 발언을 하고 있는 (왼쪽부터) 임한울, 최서인 어린이.
아동 대표 발언을 하고 있는 (왼쪽부터) 임한울, 최서인 어린이.

◇ “나도 맞으면서 컸어”…‘체벌’은 폭력, 그리고 악습

아울러 13일 열린 징계권 삭제 촉구 기자회견은 ‘때려서라도 가르친다’는 사회적 인식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자리로도 마련됐다.

특히 부모의 징계권을 법적으로 허용하면서 아동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라는 입장도 표명했다.

이날 아동대표 발언자로 나선 임한울(만 9세) 어린이는 “주위 친구들이 핸드폰을 자주 봐서, 잘 씻지 않아서, 늦잠을 자서,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거짓말을 해서 등의 이유로 체벌을 받았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해도 체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며 체벌의 수직적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덧붙여 임한울 어린이는 “어린이가 당한 체벌의 이유를 가리켜 ‘맞을 만 했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른들은 맞으면 안 되고 아이들은 맞아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와 같다”며,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서인(만 13세) 어린이는 “어른들은 ‘아이들은 맞으면서 큰다’, ‘나도 그렇게 컸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향한 체벌을 필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아동들은 맞는 것이 두려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고 싶어한다”며, “체벌은 훈육이 아닌 폭력 그리고 악습일 뿐이므로 그 악습의 대를 지금 바로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회장, 김웅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왼쪽부터)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회장, 김웅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 징계권, 종속적 관계 방치하는 구시대적 유물

기자회견을 주최한 아동단체 역시 징계권을 명시한 민법을 하루 속히 삭제 및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은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한 체벌에서 시작한다”며 “아동을 대상으로, 학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부모 체벌은 가능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성인의 56.7%가 ‘징계’라는 단어에 ‘체벌’의 의미가 포함된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며 “체벌은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민법상 징계권은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부회장은 “현재 OECD 36개 회원국 중 22개국은 이미 완전한 체벌금지 국가”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또 “우리나라처럼 친권자 징계권이 법으로 명문화된 일본에서도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시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며, “국내 민법 915조의 전면 삭제는 필수 불가한 국가 내 당면과제”라고 설명했다.

김웅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 핵심과제 중 하나가 바로 ‘징계권의 검토’였으나 2020년이 시작된 현재까지도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당면한 사회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덧붙여 “징계권 법 개정 뿐만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의 사회인식 개선을 위해서라도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 등에 정부 협력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의원.

추혜선 정의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국내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접촉 또는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며, “이 법안 내용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법 915조는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힘을 가하는 것이 폭력의 속성”이라며, “종속적 관계를 방치하는 구시대적 유물인 ‘징계권’ 대신 설득·토론 등의 방법을 통해 향후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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