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칼럼] 두 자루의 칼
[김동철칼럼] 두 자루의 칼
  • 김동철 주필
  • 승인 2018.08.28 15: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김동철 베이비타임즈 주필·교육학 박사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저자

좌우명(座右銘)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늘 바라보고 지키려는 마음가짐은 되어있는가. 그리고 그 좌우명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가.

내가 설정한 좌우명이 반드시 손에 만져지는 실익(實益)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그것과 나와의 보이지 않는 관계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리고 서로를 믿고 격려해주고 있다면? 일단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 2015년에 작고한 전직 대통령(YS)은 10대 중학교 시절부터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한민국 대통령 김영삼’이란 글씨를 써놓고 열과 성을 다한 결과, 정말 대통령이 되었다. 재임기간 공과(功過)를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뜻을 이룬 것이다. 간절히 바랐던 좌우명이 가져다준 심상사성((心想事成)의 기적이다.

세계 IT 혁명을 주도한 도전, 창조, 혁신의 아이콘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Stay hungry!(항상 부족함을 느껴라)’ ‘Stay foolish!(항상 어리석음을 깨달아라)’는 말을 곧잘 인용했다.

멋진 좌우명을 가졌다는 것은 멋진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복잡다기한 세상살이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일엽편주(一葉片舟)같은 우리네 인생, 좌우명이란 목표를 세움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이 실현되기 시작한다.

장군의 좌우명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충이었지만 그 실천방법은 두 자루 칼에 새겨진 말로 대변된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은 ‘세척 길이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도 빛이 변하도다’는 뜻이다. 즉 북방의 여진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를 상대해야 했던 장군은 강토를 침범한 원수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맹서를 하늘에 알리니 천지산하가 움직이며 감응(感應)했다는 것이다.

또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는 ‘크게 한번 휩쓰니 피로써 산과 강을 물들인다.’는 뜻이다. 무단 침입한 오랑캐들에 대한 나라와 백성의 원수를 갚아주고 말겠다는 결연한 결기가 담겨져 있다. 역시 무장으로서의 그의 좌우명은 오로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충성보국(忠誠保國)으로 귀결된다.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장검은 1594년 4월 대장장이 태귀연과 이무영이 만들어 장군에게 바친 것이고 장군은 이 두 개의 칼에 각각의 좌우명을 새겨 넣었다. 칼의 길이가 전장 197cm에 칼날만 137cm이다. 그래서 이 긴 칼을 실제로 휘두른 게 아니고 좌우명을 담아 마음을 갈고 닦는 증표로 가지고 있었다.

장군은 외로울 때나 모함을 받아 화가 치밀었을 때나 강토가 왜적에 짓밟혀 쑥대밭이 됐을 때나 전투에 나가기 전날 밤이나 언제고 좌우명을 신주 모시듯 했다. 특히 아침에 눈이 떠졌을 때 가장 먼저 좌우명을 담은 두 자루의 칼을 바라보았다. 두 자루의 칼은 장군에게는 수호신(守護神)이자 보검(寶劍)이었다.

1593년 8월 15일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의 제승당(制勝堂) 자리에서 막료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는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운주(運籌)는 운주유악(運籌帷幄)에서 따온 말인데,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운다는 뜻이다.

다음은 류성룡(柳成龍)의 징비록 내용이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운주당(運籌堂)이란 집을 짓고 밤낮을 그 안에서 지내면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전쟁에 대한 일을 의논하였는데 비록 졸병이라도 군사에 관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와서 말하게 하여 군사적인 사정에 통하게 하였으며, 늘 싸움을 하려 할 때 장수들을 모두 불러서 계교를 묻고 전략이 결정된 다음에 싸운 까닭으로 싸움에 패한 일이 없었다.”

이때 두 자루의 장검은 운주당의 한 켠을 지키며 장군이 세우는 모든 계책을 듣고 있었다. 장군은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이기는 전략을 세울 때마다 칼에 새겨진 좌우명을 바라보며 굳게 다짐하곤 했다.

1593년 장군은 수루에 올라 한산도 야음(閑山島 夜吟)이란 시조를 지었다.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경한안진고(驚寒鴈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우심전전야(憂心展轉夜) 가슴에 근심 가득해 잠 못 드는 밤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추네

남해안 곳곳 요충지에 진을 친 왜군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언제 또 다시 불시에 기습을 해올지 모르는 때 가슴 절절한 진중음(陣中吟)을 읊었다. 장군의 어지러운 심사는 새벽달에 비친 두 자루의 칼날이 뿜어내는 섬광(閃光)으로 나타났다.

삼가현감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따르면 충무공 원운(原韻)에 보태어(附忠武公原韻) 운을 밟은 시조들이 잇달아 나왔다. 지금말로 화답시(和答詩)가 이어진 것이다. 특히 고상안은 이순신과 같은 해(1576년) 문과에 급제해 각별한 인연을 가졌던 사람이다.

고상안의 시조이다.

충렬추상름(忠烈秋霜凜) 충성과 절의는 가을 찬 서리에 늠름하고
성명북두고(聲名北斗高) 명성은 북두성에 드높은데
성진소미진(腥塵掃未盡) 더러운 먼지 아직 다 쓸어버리지 못해 
야야무용도(夜夜撫龍刀) 밤마다 용검을 어루만지네

장군의 진중음에 더해 고상안은 ‘더러운 먼지(왜적)를 다 쓸어버리지 못해서 밤마다 용검을 어루만진다.’며 장군의 분함과 애통함을 표현했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이충무공을 기리는 시조들이 쏟아져 나왔다. 1656년 통제사 유혁연(柳赫然)이 남긴 ‘삼가 이순신 한산도 차운(謹次李忠武(舜臣) 閒山島韻)’이다.

호령산하동(號令山河動) 한번 호령하니 산하가 요동하고
공명일월고(功名日月高) 공명은 해와 달 같이 높았다네
여금파벽상(如今破壁上) 이제는 깨어진 벽 위에 걸려있어도
야후구룡도(夜吼舊龍刀) 밤이면 옛 쌍룡도가 울부짖누나

17세기 효종 때 경상 관찰사인 남용익(南龍翼)은 ‘존경하는 이순신 한산도 차운(敬次李忠武公(舜臣) 閑山島韻) 본가의 문서에 적다(題本家帖)’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문적수양영(聞笛睢陽詠) 수양성 노래하는 피리소리 들리는데
천추절병고(千秋節並高) 오랜 세월 변방의 절개 높았다네
시위억량장(時危憶良將) 위태로운 때 훌륭한 장수를 추억하며 
중야무룡도(中夜撫龍刀) 깊은 밤 쌍룡도만 어루만지네  

장군을 추모하며 ‘깊은 밤에 쌍룡도를 어루만지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후세의 차운(次韻)은 계속된다. 임홍량(任弘亮)의 ‘이충무한산도 차운(次李忠武公(舜臣) 閑山島韻)’이다.

덕수인호정(德水人豪挺) 덕수 이씨 뛰어난 호걸 
한산운갱고(閒山韻更高) 한산도 시운 뛰어나다
삼한재조열(三韓再造烈) 강건한 삼한을 다시 세우매 
간취구룡도(看取舊龍刀) 옛 쌍룡검 보며 깨닫네
기작산하장(氣作山河壯) 기세 일으킨 산하는 웅장한데 
명현우주고(名懸宇宙高) 명성 헛되이 우주만 높구나
천추창해상(千秋滄海上) 오랜 세월 푸른 바다에 
여로재룡도(餘怒在龍刀) 남은 분노 쌍룡도를 살피네
추광입해타(秋光入咳唾) 가을햇살 방긋 웃듯 들어오는데 
충의가쟁고(忠義可爭高) 충의는 다툴 만큼 고상하다
선열지무첨(先烈知無忝) 선열은 더럽힘이 없었음을 알겠고 
성도즉색도(晟刀卽愬刀) 밝은 칼이 곧 두려워 할 칼이로다

마지막 절 성도즉색도(晟刀卽愬刀), ‘달빛 받아 밝은 칼이 곧 앞으로 왜적들이 두려워 할 칼이로다’가 백미(白眉)다.

이렇듯 장군의 좌우명을 담은 보검 두 자루는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의 시제(詩題)로 읊어졌다. 그리고 이 애장품(愛藏品)은 현재 보물 제 326호로 지정되었다.

장군은 선조로부터 사인검(四寅劍 공이 있는 장수에게 내리는 검)을 받은 기록이 없지만 전사 후, 명 황제 신종으로부터 팔사품 중 하나인 참도(斬刀) 1쌍과 귀도(鬼刀) 1쌍을 받았다. 지금 경남 통영 충렬사에 소장되어 있다.

비록 장군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은 두 자루의 칼에 오롯이 새겨져 내려오고 있다. 때론 빛으로, 때론 울음으로.

 

<김동철 주필 약력> 
- 교육학 박사
- 이순신 인성리더십 포럼 대표
- 성결대 교양학부 교수
-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운영자문위원장, 석좌교수
- (사)대한민국 해군협회 연구위원
- 전 중앙일보 기자, 전 월간중앙 기획위원
- 저서 : ‘환생 이순신, 다시 쓰는 징비록’ ‘우리가 꼭 한번 만나야 하는 이순신’ ‘국민멘토 이순신 유적답사기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