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을 불렀던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과 교장, 교직원, 학부모 등 80여명이 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를 방문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광주일고 학생들과 교장, 교직원들은 배재고 학생들의 손을 잡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라며 실수는 반성하면 된다, 고개를 들으라”고 용서하며 따뜻하게 맞았다.
광주일고 학생들은 “이번 일을 통해 저희도 다른 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성숙한 모습도 보였다.
배재고 학생들은 광주일고에서 사과 일정을 마친 뒤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해 추모탑 앞에 국화를 놓고 헌화·묵념하며 거듭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 논란은 잘못된 일이지만, 두 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 손을 맞잡고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진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두 학교의 사과와 화해 현장에 동행해 교육 수장으로서 역할을 한 것도 아주 뜻깊다고 할 수 있다.
정 교육감은 이날 배재고 학생들과 동행해 사과한 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이 우리 학생들과 학생선수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아 건강하고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김대중 교육감은 “배재고 학생들이 광주를 찾아 사과하고 광주일고 학생들과 함께 참배하는 모습은 단순한 사과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의 과정이며, 민주주의를 배우는 뜻깊은 실천”이라고 밝혔다.
정 교육감과 김 교육감의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은 높이 살만하지만, 학교 안팎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학생들의 비뚤어진 역사관과 잘못된 정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을 책임지는 전국 16명의 교육감들도 함께 나서야 한다.
정 교육감이 회장을 맡은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역사 왜곡과 혐오, 역사적 희생자에 대한 폄훼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치권도 더이상 교육 현장의 잘못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역사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거나 국민을 갈라치는 혐오의 언어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정치권은 학교 현장에서 역사 왜곡과 혐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헌을 통하여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해야 한다. 5·18은 특정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다.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명시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5·18이 대한민국 공동체가 계승해야 할 민주주의 가치임을 분명히 하는 일이며, 역사 왜곡과 폄훼에 맞서는 헌법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정치권은 나아가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의 법적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한다.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뿐 아니라 역사적 희생자와 유족, 특정 지역을 겨냥한 악의적 조롱과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학문 연구와 정당한 비판은 보호하되, 피해자의 존엄을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는 방관하지 않는 균형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책임 강화도 필요하다.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은 이제 학교 담장을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포털 댓글, 유튜브, SNS,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되는 왜곡 정보와 조롱성 표현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신고 체계 강화, 반복게시자 제재, 플랫폼의 삭제 기준 공개, 청소년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역사 왜곡은 단순한 지식의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고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문제다.
혐오는 말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과 지역과 역사를 향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처벌만으로는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교육을 통해 예방하고, 제도를 통해 막아야 하며,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 처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교육과 처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
배재고 야구부 사건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역사의식과 어떤 공동체 의식을 물려줄 것인가.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역사를 조롱거리로 소비하게 둘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아픔을 존중하고 진실을 분별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칠 것인가.
이번만큼은 사건을 수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일회성 대책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역사 왜곡과 혐오, 역사적 희생자에 대한 폄훼가 학교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교육 수장인 교육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법,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지키기 위한 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일이다. 독일이 나치의 만행을 숨기지 않고 가르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웠듯, 대한민국도 5·18의 진실과 아픔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은 어떤 시대적 구호 속에서도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과 혐오를 방관하고, 민주주의의 아픔을 조롱거리로 소비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불행하게도 윤석열의 내란과 같은 헌정질서 파괴의 비극을 또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역사를 배우지 않는 사회는 같은 위험 앞에서 다시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교육감들이 대안을 내고, 정치권이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