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 사건을 비롯해 학생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사고(思考)의 굴절 현상은 많은 학교에서 목격되고 있다.
학교의 교육 현장과 스포츠 현장, 온라인 공간에 스며든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굳이 구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안타깝게도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다.
학교 안팎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학생들의 비뚤어진 역사관과 잘못된 정서를 바로잡기 위해 이젠 교육 현장을 책임지는 전국 16명의 교육감들이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특히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회장 정근식 서울시교육감)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역사 왜곡과 혐오, 역사적 희생자에 대한 폄훼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한다. 일회성 사과나 긴급 교육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전국 단위의 공동 정책과 실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전국 공통의 역사·민주시민교육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5·18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국가 폭력과 민주주의의 역사 등 이미 역사적으로 정립된 사안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정확한 사실과 의미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단순 암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헌법 가치에 대한 교육이어야 한다.
둘째,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 예방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 속에 체계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장난이었다”, “밈이었다”, “응원이었다”는 말로 역사적 희생자와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존엄을 훼손할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셋째, 독일의 홀로코스트 교육처럼 현장 중심의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국립5·18민주묘지, 5·18기념재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과 연계한 체험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학생들이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 증언과 기록을 접할 때 역사는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이 된다.
특히 5·18 당시의 사진, 영상, 시민 증언, 계엄군 폭력의 기록 등을 교육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상 자료는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왜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교육 자료로 사용되어야 한다.
넷째, 역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교권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는 교사가 부당한 민원과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교육청은 법률 지원, 상담 지원, 악성 민원 대응 체계, 수업권 보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학생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교권 보호는 교사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과 민주주의 교육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다섯째, 학교 운동부에 대한 특별 교육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했다. 학교 운동부는 대외 경기와 응원 문화 속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와 스포츠 윤리를 더욱 엄격하게 배워야 한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 코치, 학부모까지 함께 인권교육, 역사교육, 혐오 표현 예방교육을 받아야 한다. 경기장 안의 말과 행동도 교육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섯째, 디지털 시대에 맞는 미디어 문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 학생들은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왜곡된 역사 정보와 혐오 표현에 쉽게 노출된다. 학생들이 허위 정보와 역사 왜곡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출처 확인, 사실 검증, 혐오 표현 구별, 알고리즘 이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 활용 능력만이 아니라,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윤리적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일곱째, 학교에서 유사 사례가 발생했을 때 전국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피해 학생 보호, 가해 학생 조사, 지도자 책임 확인, 사과와 회복적 교육, 재발 방지 조치가 학교마다 제각각 이뤄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국 교육청이 공유하는 표준 매뉴얼이 필요하다. 책임은 묻되, 학생 개인에 대한 과도한 신상 공격과 낙인은 막아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처벌만이 아니라 성찰과 회복, 재발 방지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교육감들의 공동 대응과 회복적 교육이 마련된 이후에는 처벌 등 책임이 관용과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용서를 가르쳐야 하지만 용서가 책임 회피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포용은 잘못을 덮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정확히 직면하고 책임을 진 뒤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게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역사 왜곡과 혐오 표현이 반복되면 학생, 지도자, 학교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적 회복도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이번 배재고와 같은 사안에서 “아이들이니 봐주자”, “실수였으니 넘어가자”, “미래를 위해 덮자”는 식의 접근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학생이기 때문에 교육적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만 학생이라는 이유로 책임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지도자와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사과와 참배, 교육 이수는 출발점일 뿐이며 사안의 경중에 따른 징계와 재발 방지 조치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관용은 책임 위에서만 가능하고 포용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만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