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승복할 줄 아는 민주주의 정신이 기본
민주진보진영 서울·경기 교육감 단일화 경선 이후 일부 후보와 지지층에서 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선 불복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민주진보진영의 후보 단일화 과정이 정말 제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의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거와 경선은 언제나 완전할 수 없다. 참여자 명부를 만들고, 투표 절차를 관리하고, 본인 확인을 하고, 결과를 집계하는 과정에는 크고 작은 실무적 문제와 오차가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다. 그 오차가 결과의 정당성을 흔들 만큼 중대한 것인지 아니면 결과를 부정하기 위해 과장된 의혹인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번 논란은 안타깝지만, 후자에 더 가깝다. 서울과 경기 교육감 단일화 뒤 일부 후보들이 독자 출마를 선언하거나 이의신청과 고발로 맞서고 있다는 점은 경선 절차의 문제를 넘어 결과 승복의 태도를 드러낸다.
우선 대납 논란부터 들여다 보자. 누군가의 참여 비용을 대신 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경선 참여는 원칙적으로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해야 하고 비용 납부 역시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의 참여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족이 대신 낼 수도 있고 지인이 도울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곧바로 조직적 부정행위로 확대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실제로 제기된 문제는 대납 자체보다 참가비 대납 정황과 절차 불신이 함께 얽히며 커지고 있다.
최종 투표는 단순히 돈을 냈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참여 의사 확인과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실제 투표는 본인의 동의와 인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누군가 몰래 비용을 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표까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절차상 보완할 사안일 수는 있어도 경선 결과 전체를 무효로 할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도 참가비 대납, 명부 누락, 개표 참관 제한 같은 절차 문제였지만 그것만으로 결과 전체를 뒤집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의혹의 실체와 규모
규모의 문제도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수천 표 단위의 부정이 실제로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투표율 역시 모두가 알다시피 100% 나오는 경우가 절대 없다. 항상 허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주장은 대체로 의혹과 추정에 머물러 있다.
의혹은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의혹만으로 결과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근거 없는 의혹의 반복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절차 미흡을 넘어 특정 후보 측이 경선 결과를 무효라고 선언하고 독자 출마까지 강행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단일화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을 반복해 말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라 경선 결과 전체의 정당성을 흔드는 주장으로 바뀐다.
실제 증거가 없다면 이는 사실상 ‘선거부정론’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미 그런 논리를 익숙하게 보아왔다. 사전투표를 문제 삼고 개표를 의심하고 선거관리 전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의혹을 키우지만 증거는 희박하다. 말은 거칠지만 검증은 허술하다. 자신이 이긴 선거는 정당하고 자신이 진 선거는 부정하다는 식의 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언어를 빌린 불복이다.
단일화의 본질과 승복의 의미
단일화는 애초부터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안에서 하나의 선택을 만드는 것 아니었는가. 진영은 넓다. 진보도 하나가 아니고 보수도 하나가 아니다.
세상을 크게 양분하는 정치적 진영 안에는 당연히 다양한 흐름이 존재한다. 방법론에서는 온건파와 급진파가 있고 정책 내용에서는 원론파와 실용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원칙을 더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현실적 조정을 더 중시한다. 어떤 사람은 운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행정의 책임성과 집행 가능성을 더 강조한다.
단일화란 바로 이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안에서 하나의 선택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단일화는 애초부터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한 합의다.
내가 원하는 규칙이 100%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 과정에 참여했다면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단일화의 최소한의 윤리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단일화 과정에서도 어느 후보가 승복을 거부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갈등이 커졌고 다른 후보들도 이의신청과 문제 제기를 이어가며 민주진보진영 내부의 균열이 표면화됐다. 민주진보진영의 단일화 전통이 깨지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복이다. 경쟁은 치열할 수 있다. 비판도 할 수 있다. 절차상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선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을 포함한다.
결과가 마음에 들면 인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흔드는 방식이라면 애초에 경선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이번처럼 단일화가 박빙이 아니라 매우 뚜렷한 격차로 끝난 경우라면, 자잘한 절차 문제를 이유로 전체 결과를 부정할 명분은 더 약하다.
이번 서울시교육감 단일화 후보 경선에서 득표 차이는 두세 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이는 여론조사로 치면 통상적 오차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결과다. 하물며 실제 투표 결과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났다면 자잘한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전체 결과를 부정할 명분은 매우 약하다. 정말 문제였던 것은 제도였는가, 아니면 결과를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이었는가.
불복의 형태와 정치적 결과
독자 출마는 명백한 불복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불복은 아니다. 승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 계속해서 의혹을 흘리며 지지층을 붙잡아 두는 것,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경선 자체를 흠집 내는 것도 소극적 불복이다.
겉으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효과는 같다. 단일화의 힘을 약화시키고 본선의 경쟁력을 훼손하며 참여한 시민들의 선택을 가볍게 만든다. 단일화 경선에서 불복 선언과 고발까지 이어지는 현상은 결국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정치 문화의 민낯을 보여준다.
애초에 승복할 생각이 없었다면 참여하지 않는 편이 더 정직했을 것이다. 홍제남 후보처럼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는 정치적 평가가 따를 수 있지만, 적어도 경선에 들어와 놓고 결과를 부정하는 모순은 없다.
반대로 경선에 참여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절차 참여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수락이다. 경선에 들어와 놓고 결과를 부정하는 모순은 의견 차이가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다. 참여의 기회를 얻었다면 그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도 함께 있어야 한다.
양비론을 넘어 공정함으로
이 대목에서 이상한 양비론과 양시론도 경계해야 한다. “양쪽 다 문제가 있다”, “다 일리가 있다”, “서로 조금씩 자제해야 한다”는 말은 겉으로는 균형 잡힌 듯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안이 양쪽 모두의 책임은 아니다. 어떤 문제는 옳고 그름이 비교적 분명하다.
합의한 경선에 참여했고, 결과가 명확하게 나왔고, 격차도 컸다면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 이를 끝없이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
균형은 판단을 회피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함은 양쪽을 똑같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책임에 맞게 판단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결과 승복 요구를 같은 무게로 놓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결과를 흔드는 사람과 결과를 지키려는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부정을 말하는 것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핑계로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양심 불량을 작은 절차적 문제 뒤에 숨기는 것이다. 오차범위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안을 붙잡고 마치 전체 경선이 무너진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정당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자기합리화다.
제도 개선과 결과 존중의 구분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제도가 아니다. 제도는 언제나 보완될 수 있다. 대납 문제도 향후 더 명확한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참여 의사 확인 절차를 강화할 수도 있다. 납부 방식과 투표 자격 관리도 개선할 수 있다. 그런 점검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보완 가능성과 결과 불복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도를 더 좋게 만들자는 말과 이미 나온 결과를 무효화하자는 말은 구분되어야 한다. 제도 개선은 미래를 위한 책임이고 근거 없는 불복은 현재의 책임 회피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제도를 함께 운용하면서 그 안에서 나온 결과를 존중하려는 시민적 태도 위에서 작동한다. 승자는 겸손해야 하고 패자는 승복해야 한다. 이것은 오래된 원칙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자신만 옳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 내가 졌다면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기지 못했다면, 시민과 참여자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진보진영 서울시교육감 경선은 끝났다. 많은 참여자가 사실상 ‘경선 불복’에 놀라고 실망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외쳤던 후보들이 지금 자신은 과연 민주시민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