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목사 시론] 예수님 부활과 진정한 평강
[변요한목사 시론] 예수님 부활과 진정한 평강
  • 임지영 기자
  • 승인 2026.04.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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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변요한 경찰청교회 목사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 20:19)

오늘 머리글은 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을 찾아와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 가운데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홍길동’ 이야기가 있지만, 1919년 존스턴 매컬리 펄프 매거진 작가가 ‘세뇨르 조로’(Senor Zorro)라는 가공인물을 만들어 내어 검은 망토를 입고 때로는 가면을 쓰고 독재자들이나 악당을 무찌르고 약자를 돕는 일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성공하고 나서 커튼이나 옷자락에 자신의 이름을 뜻하는 ‘Z’(Senor Zorro)를 남겼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셨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빌라도를 찾아가 창에 질린 자국과 못 박히셨던 것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제사장 아나스도도 찾아가고, 가야바도 찾아가고, 예수님 손과 발에 못 박고 창을 찔렀던 군병들과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던 군병들에게도 찾아가 직접 보여주시든지 아니면 조로(Senor Zorro)처럼 흔적을 남기고 오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예수 믿으라고, 세례 받으라고, ‘531 비전’(사도행전 4:4, 2:41 누가복음 15:4)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겠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에 게임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 후 처음 만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것도 새벽에 말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8장 2절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치유된 여인입니다.

그토록 흠 많고 당시 정황으로는 신뢰받기 어려운 여인에게 예수님이 가장 먼저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신문이나 방송이 있었다면 타이틀을 이렇게 잡지 않았을까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다’

두 번째로 만난 사람들이 제자들입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요한복음 20:19) 여기서 ‘안식 후 첫날 저녁때’는 유대인의 안식일이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임을 고려할 때,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때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하루가 지나가려고 할 때입니다.

제자들은 왜 문을 닫았을까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이 다음으로 자기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도 알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음도 알지만 그것이 내 문제가 될 때 우리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부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어떤 자격을 갖추기를 원하셨을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 20:19~ 21)입니다.

이는 ‘샬롬!’ ‘안녕하십니까? 평강을 빕니다’라는 바람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평강’으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를 선사하기 전까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막힌 담이 있었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넘어설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받아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강을 누리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웃에게 전해지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던 것처럼 ‘용서’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20:23) 예수님은 왜 갑자기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를 두고 사도들에게 예수님이 사죄권을 주었다든지, 세례를 주어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어야 한다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께서 먼저 용서를 실행하셨기에 제자들에게도 용서를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의 현장에서도 이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사도행전 7:60)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변요한 목사 약력>

- 경찰청교회 시무
- 극동방송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경찰자문위원
- 서울대학교 동창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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