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이후 3년...임신중절 문제 현주소는?
‘낙태죄 위헌’ 이후 3년...임신중절 문제 현주소는?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10.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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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단체, 복지부에 건강보험·유산유도제 도입 촉구
임신중절 선택 이유 1위는...‘사회생활에 지장 있을까봐’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절 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낙태죄’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1항과 낙태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70조1항 모두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법원이 낙태 시술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신중절 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숙제’다. 국회에서 위헌 판결이 난 조항을 개정하는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해 임신중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세부적으로 정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헌재는 위헌 판결 당시 2020년 12월 31일을 입법 개정 시한으로 정했지만 국회는 시한까지 입법 개정을 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임신중절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신중절 관련 상담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임신중절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성·인권단체 연대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이하 모임넷)’는 지난 8월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7대 요구안을 발표하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모임넷은 지난달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도입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날 모임넷 관계자는 서울에서 세종청사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임신중지는 오랫동안 처벌의 대상이었기에 평등과 건강권의 문제로 고려되지 못했다”면서 “이제 더는 처벌의 영역이 아닌 만큼 최선의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 책임이 정부와 보건당국에 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 발언자로 나선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유산유도제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약인 ‘미프진’으로 잘 알려진 미페프리스톤은 자궁 안에 착상된 수정체에 영양공급을 차단해 자궁과 수정체를 분리하는 약이다. 미페프리스톤으로 분리된 수정체는 미소프로스톨이라는 약을 통해 자궁 밖으로 배출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임신중절을 돕는 약을 유산유도제라고 부른다.

이 사무국장은 “약물적 방법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물리적·지역적 장벽을 낮추고 사생활도 보호해주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라며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유산유도제를 도입해 안전하고 신속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8일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제공)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비상임연구원은 “어떻게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재생산 선택을 할 수도 없는 나라에서 여성들에게 딸들을 낳으라고 권할 수 있느냐”며 정부가 형법 낙태죄 폐지 이후 임신중지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입법 공백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처벌과 상관없는 필수의료를 법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은 복지부의 직무태만”이라며 “한국의 어떤 의료서비스도 별도의 법적 규정을 요구하지 않는데 임신중지는 왜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끝으로 “건강보장의 대상 중에 여성이 있고, 여성 건강 안에 성과 재생산 건강이 있다는 걸 인정하라”면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에서 임신중지를 급여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여름 활동가는 “장애여성의 삶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통제와 금기 중심의 성교육이나 성폭력예방교육은 실효성이 매우 낮다”면서 “보건복지부는 임신·출산 중심의 여성 장애인 모성 보건사업 내용을 전면 개편하고 전반적인 장애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지원제도를 구축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5~49세 임신 여성 17.2%, 임신 중절 경험했다

한편 인공임신중절 규모가 과거보다 전반적으로 줄었음에도 여전히 위기임신 상황에 놓이는 여성은 많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보건복지부의 위탁으로 진행했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 6월 발표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의 인공임신중절 추정 건수와 중절률은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꾸준히 줄어들다가 2019년과 2020년에 소폭 오르는 추이를 보였다.

또한 조사 시점까지 임신을 경험해본 만 15~49세 여성 중 17.2%가 조사 시점까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대해서는 32.5%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 못한다’, 7.4%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해 국가가 해야 할 일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을 꼽은 응답자가 24.2%로 가장 많았고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 공동책임의식 강화’가 21.5%로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인공임신중절 전후 의료적 상담은 97.8%의 응답자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의료상담 이외에 심리·정서적 상담에 대해서는 97.5%의 응답자가, 그리고 임신·출산·양육 지원 정책에 대한 정보의 경우 97.0%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대해 “인공임신중절 과정에서 수술 가능한 의료기관이나 비용과 같이 인공임신중절 가능성과 위험성에 직결되는 정보가 필요해 보인다”며 “모두가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환경과 현실을 반영한 제도가 갖추어지도록 대체입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한 이유 중 ‘학업 및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5.5%)’와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4%)’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출산과 인공임신중절 결정에서 사회경제적인 이유가 중요하게 작동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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