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피해자, ‘직접 증언’ 어떻게 줄일까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직접 증언’ 어떻게 줄일까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9.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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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진술 수록된 영상물 증거인정 조항 위헌”
피의자 반대신문기회 보장 vs 피해 아동 보호...대안입법 방향은?
(사진=황예찬 기자)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아동의 신체와 정신을 모두 유린하는 미성년 성폭력 범죄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적인 일이다. 게다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해당 아동이 2차 피해를 겪을 수 있어 더욱 심각한 사안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이 수록된 영상물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성범죄 피해 아동이 피해 경험을 반복해서 직접 진술하거나 공격적인 반대 신문 과정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총장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성범죄 피해 아동이 삶을 회복하고 온전히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제도의 공백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국회에서 관련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박주민 국회의원실은 (사)탁틴내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세이브더칠드런, 아동인권포럼 등 관련 기관·단체와 함께 5일 ‘아동 최상의 이익의 원칙’에 입각한 성폭력처벌법 대안입법을 위한 국회 간담회를 열었다.

사법 절차를 거치면서 피해 아동이 2차 피해를 겪는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UN이 지난 2009년 발표한 ‘사법 절차에서의 아동 범죄 피해자와 증인의 2차 피해 경험’에서는 범죄 목격자나 피해자인 아동, 특히 성적 학대의 경우 관련 사실을 공개하거나 신고하고 발생한 일을 스스로 진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릴 수 있다고 언급한다.

가해에 대한 공포, 자기 거부나 비난에 대한 잠재적 공포, 자기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공포, 부정적 부모 반응에 대한 공포, 자책감 등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판 전 대기시간은 많은 아동에게 상당히 힘든 경험일 수 있으며, 공판 지연이 휴정이나 피의자의 괴롭힘 같은 요소와 결합하면 결과적으로 아동의 균형 잡힌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언급한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며 범죄 피해 아동에 대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팀장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에 대한 일반논평 12호에서 ‘당사국은 아동이 완전한 보호를 받으며 의견청취권 행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언급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을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아동의 스트레스는 더 심해진다. 진술의 반복은 아동으로 하여금 그 과정이 쓸모없다고 느끼거나 진술의 이전 버전이 ‘충분하지 않아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며 “아동은 사법 절차에 최소한으로 노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사진=황예찬 기자)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 (사진=황예찬 기자)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북유럽 국가에서 아동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도입한 ‘바르나후스 모델’을 소개하며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바르나후스 모델은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정신건강장애인, 지능이 낮거나 사회적 기능 장애, 신체장애 등을 가진 취약 증인의 진술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모델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신빙성과 타당성이 높은 증언을 수집해 보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 내용은 아동학대 의심 사례가 발생했을 때 관련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조사 방법을 결정한 후, 전문가 참여 하에 전문조사관이 아동 진술을 진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녹화하는 방식이다. 훈련된 조사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고, 가해자 측이 참여하는 추가조사가 필요한 경우 사전에 질문을 받아서 부적절한 질문을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대표는 “바르나후스 모델은 반대 신문이 아니라 추가 조사, 추가 면담의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가 조사 요청 사유가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만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필요하면 법정 대리인의 대리 진술을 허용하고, 판사 혹은 검사 입회하에 영상녹화 열람만 가능하다”면서 아동을 사법 절차에 최소한으로 드러낸다는 점을 소개했다.

또한 이러한 바르나후스 모델에 비춰, 정부 입법안에 대한 우려점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증거보전 절차에서 신문하지 못한 내용이 있으니 증인신문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신청할 경우 재판부 재량으로 허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 좌장은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사진=황예찬 기자)
이날 토론회 좌장은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사진=황예찬 기자)

◆ 정부 개정안, “2차 피해 막을 수 있나”

정부는 위헌결정의 개정 방안으로 지난 6월 재판 전 단계인 증거보전절차를 필수적으로 진행해 피의자와 피고인의 반대신문기회를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피해자의 2차 가해를 줄이고자 피의자와 피고인의 퇴정, 비디오 등 중계장치의 활용, 전문조사관을 통한 신문을 규정했다.

소라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는 “이러한 정부안은 피해자를 가해자 측의 반대신문에 노출한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2차 가해에 노출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증거보전절차에서의 증인신문이 성폭력 피해자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소장은 “정부 발의안대로라면 송치나 기소 여부에 따라 반대신문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19세 미만 등 피해자까지도 피의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전면적으로 반대신문을 받을 수 있다”며 “반대신문 확인 의사 절차가 일률적으로 적용돼서는 안 되고 피해자 등의 요청이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재판 전 수사 과정 중에 피의자가 피해자 진술조서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 부소장은 “성폭력 상담 현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례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은 단순히 범행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한다”면서 “수사단계에서 피의자 등이 피해자 진술 상세 내용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 진술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준협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 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정부안에 담긴 증거보전절차가 과연 피해자의 반복진술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황 변호사는 “피의자들이 수사 절차에서는 자백했다가 재판 절차에서 범죄 사실을 부인한다든지, 반대로 수사 절차에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재판 절차에 이르러 추가 증거를 제출하면서 증인신문신청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신청을 불허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거보전 절차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유효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반복진술로 인한 2차 피해 방지라는 피해자 보호에는 지나치게 소홀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정아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증거보전절차를 거쳐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에 증거능력이 부여됐을 때도 재판 단계에서 피해자의 증인 소환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일률적으로 피해자의 법정 증언을 금지하는 규정은 위헌 소지가 있다”면서 “바르나후스 모델을 도입한 대부분의 해외 입법례에서도 위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의자가 반대신문에 대해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에도 증거보전절차를 개시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지적에는 “피의자가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까지 반대신문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피의자에게 반대신문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됐다고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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