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역사적 소명’ 다했나...나아갈 방향은?
여가부 ‘역사적 소명’ 다했나...나아갈 방향은?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4.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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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교수, “성 불평등 나아져...인구 문제 중요”
여러 정책 통합적으로 다루는 ‘독일식 모델’ 눈길
이수정 교수는 지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성 불평등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고 전했다. (사진=황예찬 기자)
이수정 교수는 지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성 불평등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고 전했다.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여성가족부가) 이제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나. 불공정, 인권침해, 권리구제를 위해 효과적인 정부 조직을 구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달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인선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의 입장은 확고하다. 여가부가 주력하던 성차별이나 성 불평등은 더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며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처럼 여가부가 부처로서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주장에도 다양한 반응이 나와 눈길을 끈다.

◆ 성평등 문제보다 인구감소 대응해야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와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지금처럼 계속 성차별지수 등을 가져와 여성 인권만을 높여달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이룬 그동안의 성과가 여성 인권 증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다른 어젠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따라잡아야 할 길이 멀지만 여성의 지위, 양성평등의 정도 자체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지표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에서는 한국 성별격차지수(GGI)가 156개국 중에 102위로 다소 낮은 편이긴 하지만 20년 가까이 세계 1위를 한 자살률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유엔 성불평등지수(GI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성평등 정도는 세계 11위, 아시아에서는 1위”라며 우리나라의 성평등 수준이 비교적 많이 나아졌음을 재차 강조했다.

이 교수가 언급한 성불평등지수는 성 불평등으로 나타나는 인간 개발의 손실을 수치화해 나타낸 지수다. 생식 건강, 여성의 권한, 여성의 노동 참여 등 3개 부문 5개 지표로 측정한다. 다만 남성의 지위와 비교해서 여성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측정하는 GGI와 달리 GII는 절대적인 여성의 삶의 질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남녀 간 격차가 커도 높게 나올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이어 이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가 성평등보다는 인구감소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출생률 논의도 많이 하는 만큼 자살률에 더 민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근 저출산과 인구감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하루에 40명씩 죽어나가는 자살 문제를 내버려두게 되면 인구 유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사람도 줄어드는 판에 누가 아이를 낳겠냐”고 말했다. 또한 “그런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려하는 부처를 신설한다면, 굉장히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양성평등 정책이 자살 방지에 영향을 많이 준다”면서 “양성평등이라는 가치는 유지하되 아픈 대한민국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훨씬 더 미래지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모델을 소개하는 하나 베커 주한 독일 대사관 1등 서기관. (사진=황예찬 기자)
독일 모델을 소개하는 하나 베커 주한 독일 대사관 1등 서기관. (사진=황예찬 기자)

◆ 가족 정책부터 ‘남성·청소년’까지, 독일 모델 어떨까

최근 여가부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되는 방법의 하나는 바로 ‘독일 모델’이다. 독일 모델을 참고한다면 여가부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포괄적인 정책을 다루는 조직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관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독일은 연방 정부에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Federal Ministry for Family Affairs, Senior Citizens, Women and Youth)’를 두고 있다. 서구 주요 국가 중에 장관이 지휘하는 여가부 성격의 부처를 둔 곳은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은 노동부 안에 여성국을 두어 성별 임금 격차 등을 점검하고 법무부 산하 여성폭력방지국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다. 영국은 국무부장관 아래 있는 차관급 중 한 명이 ‘여성평등부’를 맡고 프랑스는 독립 부처 대신 총리 직속 기관을 둔다.

독일은 1953년 ‘연방 가족부’를 출범하며 가족 정책을 처음 중앙부처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청소년 업무를 추가해 ‘가족·청소년부’로 개편했고 1969년에는 보건 분야가 부처에 포함됐다. 1986년에는 처음으로 ‘여성’이 포함돼 ‘청소년·가족·여성·보건부’로 확대됐고 잠시 ‘가족·노인부’와 ‘여성·청소년부’로 나뉘었다가 1994년 다시 결합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생겨나는 정책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해온 것이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뀔 때도 있었지만 기존 부처에 새로운 분야가 누적되는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 베커 주한 독일 대사관 1등 서기관은 “이처럼 여성 정책을 다루는 부처가 독립적으로 생기게 된 법적 근거는 국가가 남녀평등의 실제적인 이행을 촉진하고 장려한다는 조항이 독일 헌법인 기본법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분야를 추가하며 부처를 확대해온 역사에 걸맞게 독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가족 정책, 노인, 평등, 아동·청소년, 복지와 시민참여 등이 업무를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게 특징이다.

가족 정책에는 부모 수당과 한부모 비과세수당 등 가족 관련 혜택이 포함된다. 부모의 육아휴직, 예비 산모를 보호하는 노동법 조항도 여기에서 다룬다. 노인 정책 분야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지원할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치매 전략, 노인의 디지털화 지원 등도 수행한다.

평등 정책과 관련해서는 임금차별 타파, 여성의 고위직 승진 기회 보장, 일과 가정 양립 등을 다루고 성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일도 한다. 또한 아동·청소년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온라인 미디어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복지 서비스, 직업 훈련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베커 서기관은 “지난 2020년에는 남성과 청소년을 위한 평등을 담당하는 부서도 생겼다”면서 “정부가 여성의 권익뿐 아니라 남성, 혹은 젊은 남성의 권익과 그들의 지위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를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일단 유보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7일 오전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정부 조직 개편을 새 정부 출범 이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를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했다.

김 후보자는 언론 취재에 응답하면서 “새 시대에 맞게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성, 출산과 육아를 하며 겪는 경력단절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미래지향적 부처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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