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찾는 건 출생신고 까다롭고, 불륜으로…
‘베이비박스’ 찾는 건 출생신고 까다롭고, 불륜으로…
  • 백지선
  • 승인 2014.07.2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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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국내 베이비박스가 처음 생긴 2009년 12월 16일부터 베이비박스는 입양특례법 시행과 맞물리면서 유지와 폐쇄 양측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생명을 살리는 박스’로 부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살리는 박스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자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2014 제6회 미혼모와 이들 자녀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포럼 - 베이비박스는 지금?’에 참여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은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의 사례에 비춰 유기되는 아이 수를 줄이면서 출생신고를 통해 아이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 2014 제6회 미혼모와 이들 자녀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 포럼.

 


◇안심하고 아기를 버리세요?

베이비박스가 등장했을 당시 언론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 2011년 들어와 언론의 관심을 받는가 싶더니 2013년 1월 들어와 보도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당시 국민일보는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기사를 총 9회 내보냈다(2013년 1월 언론사 보도 수 총 21회였다). 국민일보 보도는 타 언론사에 의해 그 내용이 재생산됐다.

▲ 베이비박스 관련 언론보도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당초 의도와는 달리 국민들은 ‘아이를 안전하게 버릴 수 있는 곳’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베이비박스가 알려진 이후 2009~2013년 영아 유기 건수는 2009년 1건에서 2013년 252건으로 늘었다. 주사랑공동체 측은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보호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관악구청(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는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은 ‘안심하고 아기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오히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고 보고 있다.

▲ 주사랑공동체 전도사들.

 


◇출생신고 조건 너무 까다롭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린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해보면 다음의 경우중 하나다.

첫째, 아이의 엄마가 미성년 미혼모인 경우다. 미성년자가 자신이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등록)를 하기 위해서는 양쪽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양쪽 부모가 신고 기관에 오지 못하면 출생신고는 불가하다. 오랫동안 부모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 미성년자라도 출생신고를 하려면 부모를 찾아내 신고기관에 방문하도록 해야 한다. 또 미성년자는 대부분 학생인데, 아이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학교로부터 자퇴나 전학을 권유 받는다.

둘째, 아이의 아빠가 미성년 미혼부인 경우다. 출생 신고 시 미혼모의 인적사항을 적어야 하는데, 이때 아이 엄마의 본적(本籍)도 함께 적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알기 쉽지 않으며 결국 미성년 미혼부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포기하게 된다. 주사랑공동체에 들렀던 사람들을 분석하면, 10 가운데 여성이 7, 남성이 3 비율이다.

셋째, 불륜 관계다. 통상 불륜이라 하지만 경우에 따라 남녀 두 사람이 법적으로는 각각 다른 가정의 남편과 아내일 수 있다. 이들은 배우자와의 오랜 별거로 거의 남남처럼 지내다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나 아이를 낳았어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라서, 출생신고를 하게 되면 현재 별거중인 남편의 밑으로 신고되기 때문이다. 별거중인 현재 남편과 당장 이혼한다 해도 이혼 후 300일이 지나야 아이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이혼 후 300일이 지날 때까지 아이는 당분간이라도 어딘가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넷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의 부모, 다섯째, 외국인의 아이, 여섯째, 장애아 등이다.

▲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오른쪽에서 두번째).

 


◇여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바탕 돼야

(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오혜영 홍보팀장은 아이를 유기하는 원인으로 ‘임신부의 심리불안과 정보부족’을 꼽았다. 오 팀장은 “임신을 해 8, 9개월까지 가면 여성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며 “출산이 임박해질수록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방법, 육아, 취업(근로)에 대한 고민과 욕구가 늘어나지만 정보가 부족해 심리가 불안정한 상태로 출산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만 두고 가는 게 아니라 엄마(혹은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며 “미혼모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산발적이라 혼자 육아를 생각했던 미혼모가 방법만 찾다 지쳐, 아이 유기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럼에 참석한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죽을 뻔했던 아이가 살아났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비박스 안에 아이를 두면 아이가 살고, 여기 두지 않으면 아이를 헤치는 엄마로 인식할 수 있다”며 “여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먼저 마음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4 제6회 미혼모와 이들 자녀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 포럼 조별 모임중.

 


◇베이비박스 안이 텅 비도록 기도하는 사람들

주사랑공동체 측은 “베이비박스 설치 결정을 내리고 ‘아이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베이비박스의 벨이 울리면 방문한 내담자의 이야기, 그들의 불안과 분노까지 다 듣는다”고 말했다. 이후 주사랑공동체 상담가는 부모된 입장을 설명하며 교회이기에 신앙 상담까지 한다. 주사랑공동체 측은 “베이비박스 설치 시점만 하더라도 입양특례법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며 “입양특레법이 변수였다”고 논란의 시작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측은 “원점으로 돌아가, 임신중단은 불법이 됐고 아이를 가진 여성은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여성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상황, 낳을 수 없는 상황 모두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베이비박스 그 후 캠페인 후원 영상.

 


◇법 사고 유연해져야

오영나 법무사(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전문위원)는 “법무부에서 가족관계등록법 위원회를 만들어 9월 입법안을 내겠다는 소식을 21일 접했다”며 “입법안 가운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각 지자체장이 한다’는 안이 추가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이만 출생신고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며 가능하면 부모를 알아내 부모 밑에 넣으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 조금이라도 조건이 부족하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점을 지적했다. 오 법무사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국적이 없는 데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아이의 상황에 따라 권리가 보장되도록 유연한 법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오 법무사는 “입양특례법은 아이를 입양시키려면 친부모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불가하다면 아이 관계자의 동의로도 입양이 가능한 제도다”며 “즉 아이 출생신고와 관련해 입양특례법이 아닌 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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