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주52시간 여전히 '뜨거운 감자' 노사-여야 팽팽
건설업계 주52시간 여전히 '뜨거운 감자' 노사-여야 팽팽
  • 김철훈 기자
  • 승인 2018.09.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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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건설사 "산업특성 무시, 현장 혼란 가중" 개선 요구
노동계 "노동자 임금감소로 고통, 포괄임금제부터 폐지"
정부여당 "제도 당위성 공감…세부지침 정비로 성공 유도"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위기의 건설산업, 근로시간 단축 대응방안 대토론회'에서 좌장 김동주 전 국토연구원장의 진행 하에 토론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위기의 건설산업-근로시간 단축 대응방안 대토론회'의 모습.

[베이비타임즈=김철훈 기자] 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워라밸 문화’ 확산을 위해 지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주 52시간제’를 놓고 노사는 물론 여야, 업종간 갈등과 대립이 여전히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 자영업·IT 등 노동집약형 업종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최근에는 건설업계도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골이 더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건설업체 및 관련단체들이 잇따라 토론회, 간담회를 열고 주 52시간제 시행을 건설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획일적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건설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에 정부와 여당(더불어민주당)은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세계적 노동시장 흐름임을 강조하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현장에서 제기하는 일부 시행상 문제점을 세부적으로 손질해 주52시간제의 성공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노동계는 재계의 주장에 크게 반발하는 동시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자의 임금 감소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보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점을 질타했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임금 감소’를 유발시키는 현행 포괄임금체계를 폐지하는 게 주52시간제의 안착과 실효성을 높이는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업계와 야당 “근로시간 단축 제도개선” 한목소리

지난 10일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환경노동위원회), 이은권 의원(국토교통위원회), 추경호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이 주최하고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회장 유주현)가 주관하는 '위기의 건설산업, 근로시간 단축 대응방안 대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의 참석 없이 야당 의원과 기업관련단체가 주도한 토론회였지만 국회 3개 상임위원회 소속 야당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자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신보라 의원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기연장, 비용증가 등 추가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지 두달이 넘었지만 건설현장에서의 혼란과 부작용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은권 의원과 추경호 의원 역시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 소득감소로 이어진다”며 “저녁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에 투잡(two job)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발제에 나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은정 부연구위원은 “건설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면서도 옥외에서 작업이 이루어져 계절, 날씨 등 근로시간의 변화가 매우 크기 때문에 주 52시간 근로제를 다른 업종과 함께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박광배 연구위원도 “프로젝트에 따라 노동력 운용의 집중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수주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 건설현장에는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참석한 두산건설 이대식 상무는 “건설산업은 먼저 완공 일정을 정해 판매한 후 제조에 들어가는 ‘선주문 방식’의 산업”이라며 “기존 주 68시간 제도를 기준으로 계획되어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인 현장에 주 52시간 근로를 적용하는 것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된다. 제도 시행일 현재 진행 중인 건설현장은 근로시간 단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천건설 김응일 대표도 “합숙시설에서 생활하는 지방 공사현장의 근로자들은 한시간 일찍 퇴근한다고 해서 크게 좋아하진 않는다”며 “그들은 오히려 일할 수 있는 날 더 많이 일해 더 많이 벌어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지난 4일에도 인천건설인연합회와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국토교통위원회)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대응방안을 위한 연속기획 1탄-위기의 건설산업 돌파구는?’ 정책간담회를 대한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한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 이덕인 회장과 대한전문건설협회 인천시회 정하음 회장은 민 의원에게 근로시간 단축의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적용’을 건의했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건설공사는 계절별, 월별 업무량의 변화가 크고 업무집중도가 높아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확대가 매우 필요하다”며 “현행 2주, 3개월 단위기간을 4주, 1년 단위로 각각 확대⋅단순화하고 제도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 제51조에 따라 일정 기간을 평균해 1일간 또는 1주간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일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제도다. 현행법상 평균을 계산하기 위한 단위기간은 2주, 3개월로 되어 있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4주, 1년 단위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보라 의원은 이미 지난 4월 단위기간을 1개월, 1년으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민경욱 의원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적용 등 건설업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노동계 “더 중요한 것은 포괄임금제 폐지”

두 차례의 토론회에서 제기된 건설업체의 불만에 노동계는 ‘적반하장 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여가가 늘어나는 것보다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할 만큼 애초에 건설업계에 만연한 저임금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건설노동계 주장의 밑바탕에는 ‘포괄임금제’가 자리잡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업무 특성상 야근 등 시간외 근로수당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 시간외 근로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지급하는 임금제도다. 근로기준법에 존재하지 않는 임금산정방식인 만큼 엄격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법원은 건설노동자의 근로시간 산정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선 안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2011년에 정한 건설노동자 포괄임금 지침을 지금도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건설근로자들은 지난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포괄임금제 지침 폐지 촉구’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송주현 정책실장은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시 시간외 수당을 미리 정해버리기 때문에 실제 초과근무시간보다 적은 수당을 받는 사례도 많고 자연스럽게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하고 “건설사들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임금도 줄어들어 근로자들도 근로시간 단축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일용직 근로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는 포괄임금제는 외면하고 있다”고 건설사들을 비판했다.

송 실장은 “건설현장 산재사고는 휴일에 더 많이 발생한다. 개인별로 생활형편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을 찬성하는 근로자도 있고 반대하는 근로자도 있지만 산업 전체 차원에서 볼 때 휴일에는 쉴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맞다”고 피력했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서는 이미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임금 수준이 대체로 법정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수준이기에 기업계나 노동계 모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 “당위성에 공감, 세부지침·가이드라인 정비 서두를 것”

근로시간 단축 논란에 정부와 여당은 단호한 태도이다. 신보라 의원 등이 개최한 10일 토론회에서 정부측 패널로 참석한 국토교통부 김영한 건설정책과장은 “제도의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 “원활한 제도 시행을 위해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김 과장은 “추가적인 인력, 비용, 공기 연장이 발생할 경우 발주자에게 공기 연장, 비용 증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했으나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제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즉, 비용 증가, 공기 연장이 근로시간 단축 때문인지 잘못된 노무관리나 부적절한 설계, 공법 때문인지 규명하기 쉽지 않아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좀더 정책적 사전 배려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빠른 개선을 약속했다.

고용노동부 하창용 노동시간단축지원TF팀장 역시 “노동시간 단축은 당위의 문제”라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두고 있지만 제약도 많이 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도 독일은 하루 10시간 이상 근로 금지, 프랑스는 하루 11시간 휴식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중소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의견발언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공기 연장, 비용 증가는 건설산업기본법에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상치 못한 경제상황의 변동이므로 변경사항을 반영해 발주자에게 추가로 요구하면 된다”며 문제될 것도 다툴 것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기업인은 “문제는 법 규정이 있음에도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증가 비용을 발주자는 원사업자에게,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게 전가하기 바쁘고, 이 때문에 가장 힘이 약한 중소 건설업체는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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