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고가항공권 한국유니세프 ‘도덕성 실추’
성희롱·고가항공권 한국유니세프 ‘도덕성 실추’
  • 이경열 기자
  • 승인 2018.06.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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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사무총장 성희롱발언 자체조사서 부인, 정부 제재하자 ‘꼬리 자르기’
직원 채용·사옥구입 과정 대출이자 높은 은행 강권 등 부당개입도 드러나
비즈니스석 해외출장 “규정 따른 것” 해명에 비난 일자 “비용절감 하겠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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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타임즈=이경열 기자] 국내 2위 규모 아동구호단체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한국유니세프)가 지난해부터 잇달아 제기된 비리 의혹들로 도덕성과 위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고위간부인 사무총장의 성희롱 발언과 관련, 초기에 전면부인하면서 진상조사위원회조차 형식적인 조사로 비난을 받다가 1년을 넘긴 지난 3월 고용노동부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자 해당 간부의 퇴임과 신임 사무총장의 사과성명으로 일단락 지으려 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내부 진상조사서 성희롱 없다더니 노동부 제재에 서둘러 퇴임

지난해 2월 한국 유니세프의 사무총장 S씨는 여직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피해 여직원의 상담을 들은 팀장의 문제 제기로 구성된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는 “S씨로부터 '영어 하는 게 동두천 미군 접대부 같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무급휴직을 했다"는 여직원의 진술을 들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직접 피해자가 아닌 팀장이 신고했고, 피해자 반응에서 특이사항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S씨의 성희롱이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사실무근”이라고 전면부인한 발언 당사자 S씨의 손을 들어준 셈이었다.

당초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사태를 파악해 진상이 밝혀지면 내부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할 방침”이며 “상당히 높은 윤리강령을 가지고 있는 조직인만큼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즉시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할 방침”이라고 의지를 밝혔지만, 진상조사위가 ‘무혐의’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결국 진상규명보다는 ‘조직보호’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오히려 한국유니세프는 간부의 성희롱 발언을 문제 제기한 팀장을 지난해 12월 ‘보복성 해고’로 비춰지는 석연찮은 인사 조치를 내려 다시 구설수에 휘말렸다.

팀장이 임직원 간 불신을 조장하고 직원들의 집단행동을 유도했다는 것이 해고 사유였다.

해고에 반발한 팀장이 고용노동부에 구제신청을 냄으로써 유니세프한국 사내 성희롱 발언 문제는 정부 쪽으로 비화됐고, 결국 노동부는 성희롱 발언을 의혹이 아닌 ‘사실’로 판단해 지난 3월 과태료 320만을 부과하는 징벌조치를 내렸다.

물론 사무총장 S씨는 보직사퇴했으나, 정부의 유권해석이 내려지자마자 일주일만에 유니세프한국 측은 S씨 자진퇴임 형태로 성희롱 발언 사태를 서둘러 마무리 짓으려 했다.

더욱이 한국유니세프는 노동부의 판단과 과태료 부과 조치에 불복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이의 제기(행정소송)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새로 선임된 이기철 사무총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과 후원자에 드리는 글'에서도 확인됐다.

이 총장은 “성희롱 주장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러한 의혹을 야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성희롱을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한국유니세프의 인식을 잘 드러냈다.

서울 창전동(광흥창)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건물 모습.
서울 창전동(광흥창)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건물 모습.

임원 해외출장에 비싼 비즈니스석 이용 '기아구호 후원' 무색

전임 사무총장의 성희롱 발언 외에도 한국 유니세프는 40만명에 이르는 회원들의 십시일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간부 해외출장 때마다 항공사 이코노미석보다 3배 가량 비싼 640만원 짜리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온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전세계에 걸쳐 배고픔에 시달리는 기아들을 위해 유니세프 이름을 빌어 후원금을 모으고 있는 구호기관의 임원들이 고액의 항공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남으로써 일반항공석(이코노미석)과 차액만큼 더 많은 기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인도주의 취지를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파문이 커지자 한국유니세프는 공지글을 통해 “모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직원은 출장시 일반석 항공권을 이용하지만 사무총장 등 임원은 7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하는 경우에 한해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해명했지만, 고위간부 편의성만 생각했을뿐 기구 운영의 목적을 간과했다는 거센 비판만 더 불러일으켰다.

직원 채용과 은행 대출과정에도 부당개입 드러나

뿐만 아니라 문제의 전임 사무총장 S씨는 직원 채용 인사와 사옥 매입 대출 추진에도 부당개입한 의혹을 받으면서 한국유니세프의 도덕성에 흠집을 더 새기었다.

S씨는 지난 2016년 3월 “홍보팀에 전담 사진사가 필요하니 한 번 만나보라”며 내부 인사팀장에게 한 장의 이력서를 건넸다. 당시에 홍보팀장은 이력서를 받았지만 정치외교학과 전공에 사진 경력은 전무한 지원자여서 채용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S씨는 이력서의 지원자를 계속 채용하라고 종용하면서 인사팀 직원들을 호통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유니세프가 2016년 서울 종로구에 있던 기존 사옥을 매각하고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현재 사옥을 매입하기 위한 74억원 가량의 대출을 추진하는 과정에도 S씨가 사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옥 매입자금 대출을 추진하면서 S씨는 대출이자 금리가 가장 높은 특정은행 지점을 거론하면서 기안서를 작성하라고 실무자에게 지시했다는 것.

이 특정은행은 한국유니세프 기존사옥의 매각 중재를 맡은 지점으로 다른 은행지점보다 대출이자를 연 2700만원 더 내야 하지만, 사옥 매각 중개수수료를 3000만원 이상 깎아주겠다고 제안해 지목했다는 게 S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유니세프 송상현 회장이 이같은 방식의 대출은행 선정 추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사무총장에세 이메일을 보내 그대로 진행할 경우 배임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무산시켰다. 이후 한국유니세프는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대출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한국유니세프의 비리성 사건이 잇따르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그동안 후원 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깨끗한 곳인가”라며 한국유니세프에 실망하면서 힐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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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니세프 “비리에 머리 숙여 사과…투명·공정하게 새출발”

이처럼 외부의 비난 목소리가 커지자 한국유니세프는 지난 14일 ‘SNS 보도 관련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드리는 말씀’의 공지글을 올리고 “사무총장 등 임원은 7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에 한해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고 해명한 뒤 “후임 사무총장 부임 후 비용절감을 위해 사무총장은 모든 출장 시 비즈니스석이 아닌 일반석을, 직원들은 더 저렴한 이코노미석을 찾아 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뒤인 15일 후임 이기철 사무총장은 ‘후원자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과거 한국위원회 간부의 공무출장 시 비싼 항공권 이용, 직원 채용과 은행 대출과정 등과 관련된 문제로 후원자님 여러분들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앞으로 후원자의 뜻을 가장 높게 받는 단체로 만들고, 더 절약하고 개선해 더 많은 기부금이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하고, 위원회 운영에 투명성·공정성·합리성·효율성을 가장 중요한 업무지침에 삼겠다며 ‘한국유니세프의 새출발’을 약속했다.

한편, 지난 2월에는 유니세프본부 임원인 저스틴 포사이스 사무차장이 과거 성희롱 전력으로 사임했다. 포사이스 전 사무차장은 2011년과 2015년 세이브더칠드런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당시 젊은 여직원 3명에게 부적절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옷차림·외모를 언급하며 성희롱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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