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의 길] 역사와 삶이 있는 강화도 나들길
[정경석의 길] 역사와 삶이 있는 강화도 나들길
  • 송지숙
  • 승인 2017.04.1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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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석 여행작가

 

나이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자연을 즐기고 체력단련도 겸해서 등산을 다녔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국내 트레킹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아내와 처음 찾은 강화도의 나들길을 걸은 이후 트레킹에 폭 빠져 버렸다.

강화도를 시작으로 지난 7년간 국내 지자체들이 만든 트레킹코스를 찾아 이곳저곳 많이 걸어 보았지만 강화도 나들길의 매력을 따라 올 곳은 없었다. 그 이유는 강화 나들길의 기원만큼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강화 나들길은 110년 전 조선시대의 선비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길에 대한 예찬을 ‘심도기행’이라는 책으로 펴낼 정도로 역사가 있고, 지금도 그 길이 모태가 되어 전체 20개의 코스, 약 300km가 넘는 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길은 오랜 세월 농부들이 논밭에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바다로 일하러 다니며 물물교환을 위해 넘던 길, 마실을 다니던 길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왕들이 강화도로 피난을 와 지내던 시절의 역사적인 길들로 이루어져 있어 국내 다른 지역처럼 걷기 열풍에 따라 일부러 관광목적을 위해 여러가지 이름으로 트레킹 코스를 만든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강화도에는 우리나라 건국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마니산이 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우리의 아픈 사연들, 그리고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섬이다. 나들길을 걸으면 역사 깊은 도시의 지붕이 없는 박물관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강화읍 중심지를 둘러 쌓은 나들길 15코스 ‘고려궁 성곽길’에서 폐허가 되고 때론 복구된 성곽의 돌에 켜켜이 낀 이끼들에서 전쟁의 잔흔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비참한 역사인 몽골의 침입에 어쩔 수 없이 강화로 피난을 왔던 고려왕들의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나들길 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에서는 고려 원종의 순경태후의 흔적인 가릉이 있고, 고려 강종의 원덕태후의 능이 있는 곤릉 그리고 희종의 부인의 무덤인 석릉을 쓰다듬으며 역사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25대 왕이었던 철종이 자신이 왕족의 신분인 줄 모르고 가족과 함께 강화로 유배되어 시골아가씨인 양순이와 사랑하며 걸었던 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이 있어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폭군이라 일컫는 연산군이 강화로 유배되어 살던 교동읍성에 아직 우물과 작은 묘비가 남아 있고, 6·25전쟁 당시 이북에서 잠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사는 대륭마을에는 60~70년대의 작은 동네 모습이 남아 있어 옛적을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나들길 9코스 ‘교동 다을새길’이 있다. 

고대에 이 땅에 살던 부족들이 줄지어 잠들어 있는 고인돌을 찾아가는 나들길 17코스 ‘고인돌탐방길’에서 유적지로 잘 보존되어 있는 고인돌 군락지를 보며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

근대 역사에 강화도는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전초기지였기에 강화도 전체 해안에는 대포를 쏘기 위해 만들어 놓은 53개의 돈대와 당시의 각종 군시설들이 즐비하다. 해변가를 걷는 나들길 코스들은 이 돈대들을 탐방하며 탁트인 바다의 전경을 바라 볼 수 있다.

▲ 강화도 나들길을 찾은 관광객들이 돈대에서 잠시 쉬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화도 땅의 3분의1 정도는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족들이 피난을 오면서 따라온 군사들과 식솔들을 먹여 살릴 농지를 제공하기 위해 끝없이 갯벌을 메워 갔다. 당시에는 중장비도 없었을텐데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간척지의 면적은 실로 대단하고 그 땅에서 갯벌의 영양분과 해풍을 맞으며 자라고 수확한 강화쌀은 언제나 최상의 품종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강화나들길이 좋은 것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마을 뒷산의 능선길을 걷는 즐거움이다. 그 길은 논둑길로 이어지고 밭과 밭 사이의 길로 이어진다. 곡식이 익는 가을에는 출렁이는 황금벌판을 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에서 볼 수 있고 강화도의 동쪽에 사는 주민들이 서쪽 해안으로 가기 위해 가로질러 걷던 나들길 5코스 ‘고비고개길’에서는 계절마다 야생화들과 산딸기, 오디 등 야생열매들이 즐비해 따 먹으며 걷느라 걸음이 느려지기도 한다.

특히 강화는 갯벌과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들길 7코스 ‘낙조보러 가는 길’에 있는 낙조전망대에는 매일 저녁이나 연말에는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고, 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 길’에는 먹을 것이 많은 갯벌에 몰려 드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던 석모도가 이제 곧 삼산연륙교가 완성되면 편하게 갈 수 있는 나들길 11코스 ‘석모도바람길’과 19코스 ‘상주해안길’이 될 것이고, 육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섬인 주문도와 볼음도에 있는 나들길 12, 13 서도코스는 도시를 멀리 떠나 외딴 섬에서 온전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 강화도 나들길을 꽃과 함께 걷고 있는 관광객들.

 


비단 나들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강화도를 방문하는 것이 즐겁지만 교통이 편리해 가족과 함께 하루 여행이나 혹은 1박2일을 즐길 수 있는 숙박 시설들과 밴뎅이나 장어, 젓국갈비 등 토속 먹을 거리,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역사적인 볼거리, 마니산 등반이나 고려산 진달래축제, 농촌과 갯벌체험, 강화5일장 같은 즐길 거리들이 가득한 곳이 강화도이다.

강화군에서 운영하는 나들길 인터넷사이트에는 요일마다 현지인 가이드가 리드하는 코스에 참여하여 함께 걸을 수 있고 트레킹 후 좋은 강화의 먹거리도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봄, 주말이나 조용한 평일에 훌쩍 배낭 하나 둘러 메고 강화도의 숲속길과 바닷가길로 떠나 보자.

<정경석 프로필>

- 여행작가
- 저서
*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2012)
* 산티아고 까미노 파라다이스(2016)

 


▲ 강화도 나들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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