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칼럼] ‘비상망치가 비상이다’
[김호중칼럼] ‘비상망치가 비상이다’
  • 온라인팀
  • 승인 2016.10.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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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중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

 

13일 운전기사 ‘비상 망치’ 안내 안 해 승객 10명 사망
2000년 부일외국어고 수학여행 때도 버스사고 14명 숨져
정부, 이제야 비상망치 위치 안내 의무화한다니

국토교통부가 대형버스 사고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 16일 뒤늦은 대책을 내놨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전세버스의 경우 비상 망치와 소화기 등 안전장치 사용법이 포함된 시청각 자료를 만들어 2017년부터 안내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사고발생 시 승객에게 운전자가 비상 망치와 소화기 위치를 의무적으로 안내해야한다는 것으로, 상식적인 의무사항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조치를 이제야 내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상 망치 의무화는 16년 전 사고로 되돌아간다. 지난 2000년 7월 14일 부산 부일외고 수학여행단을 실은 버스가 연쇄추돌사고를 당했다. 이중 7호차에 탑승한 학생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희생자 학생들은 차량의 창문을 깨려는 시도를 했지만, 창문이 깨지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형버스 내부에는 비상망치 4개를 설치하도록 의무화됐다. 국토부의 이번 조치를 보면 설치는 의무화하되 사고발생 시 운전자가 비상 망치위치를 승객에게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최근 경부고속도로 언양 IC인근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사고에서 희생자가 컸다는 분석이다. 당시 운전기사 이모(48)씨가 가장 먼저 버스에서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운전기사는 사고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소화기로 차량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으며, 차량 내 설치된 비상망치의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비상 망치 설치가 의무화됐는데, 사고발생 시 장구가 설치된 위치를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을 하지 않은 운전자의 처벌 수위에 참고가 될 만한 요소가 없다는 의미이다.

운전자는 최소한 승객을 구호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가중처벌을 받아야 정의로울 것이지만, 이런 의무가 없었다는 것은 당국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비상망치 비치와 관련된 특별점검이 없었던 바는 아니다.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점검반을 편성해 전국 주요 관광지를 찾아가 전세버스 운전사의 음주운전, 회전식 의자 등 차량 불법구조변경, 비상망치 비치 여부 등을 단속해왔다.

하지만 사고발생 시 비상 망치나 소화기 위치를 승객에게 적극 알릴 필요가 없었다. 규정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 안전기준은 승차정원 16인 이상인 자동차의 경우 차체의 좌측면 뒤쪽 또는 뒷면에 폭 40㎝, 높이 120㎝ 이상의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일정 규격 이상으로 총면적이 2㎡ 이상인 강화유리 창문이 있으면 비상구를 대체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비상시 탈출을 위해 창문을 깰 수 있는 장구(비상망치)를 차실 내에 4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

한편, 차량 내 설치된 비상 망치를 절도하는 사건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수십 명의 목숨과 관련된 비상 장구를 챙겨가는 시민의식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사고는 미리 알 수 없지만,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비치돼 있고 안전하게 대피하고 탈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느냐의 여부와 승객이 그 사실을 아는지 여부가 대형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시민옴부즈맨공동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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