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EYE) 지키자 (15)] 국내 안(眼)보건 발전에 평생 헌신한 원로의학자
[우리 아이(EYE) 지키자 (15)] 국내 안(眼)보건 발전에 평생 헌신한 원로의학자
  • 정재민
  • 승인 2015.06.10 10: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명예회장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명예회장 인터뷰

[베이비타임즈=정재민 기자] ‘몸이 100냥이면 눈은 90냥’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몸에서 눈 건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금이야 안과학이 발달해 간단한 치료와 예방 교육으로도 눈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의료체계가 정립되지 않던 1970년대만 해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단순한 치료로 실명을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황으로 병원 문턱을 밟지 못해 실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구제하고자 1973년 설립된 민간단체가 한국실명예방재단이다. 재단의 설립자이자 명예회장인 구본술 박사를 만났다.

◇격랑의 시대를 넘어 온 의료 외길 인생 =
구본술(91) 박사는 우리나라 안 보건 분야의 산증인이다. 그는 지금도 구순이 넘는 나이에 재단으로 금요일마다 출근해 일을 보고 있다. 의학계의 원로이자 평생 의료봉사와 열정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해 온 그는 동료․환자․지인들의 롤모델이 되어 왔다.

그가 지금과 같이 의료 외길 인생을 걸으며 의료인들의 존경 받는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도 훌륭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의대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의사로서의 길에 회의를 품게 된다. 그는 고민 끝에 경기공립중학교(현 경기고) 시절, 지리학과 박물학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정기를 심어줬던 김교신 선생을 찾아갔다.

김교신(1901~1945) 선생은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간행해, 일제 통치라는 민족의 시련을 성서연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신앙으로 극복하자고 외친 신앙운동가이자 당대의 지성인이었다. 구 박사는 자신의 앞길에 대해 의학도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조언해 주리라 내심 기대하며 김교신 선생을 찾았다.

하지만 김교신 선생은 구 박사에게 “의사가 되어 국민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의학도의 길을 계속 갈 것을 주문했다. 당시 구 박사는 ‘훌륭하신 선생님이 제자를 엉뚱한 길로 인도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단다.

의대생 시절 안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서울대 안과학교실 교수였던 고 윤봉헌 교수(서울대 초대 안과과장)의 훌륭한 강의를 꼽았다. 강의에 매료되지 않았던들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군의관 시절을 보내던 중 의사로서의 회의가 다시금 그를 엄습해왔다.

그는 스승을 찾아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구 박사의 자질과 잠재력을 알고 있던 스승은 그를 붙잡았다. 원로의학자의 청년기는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이라는 격랑의 시대 속에 방황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한국실명예방재단, ‘국민의 볼 권리’ 제창 =
국민의 시력 보호, 실명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설립된 한국의 대표적 단체인 한국실명예방재단. 안(眼) 보건에 대한 관심이 전무했던 시기에, 고 오재경(전 문화공보부 장관) 당시 회장과 구본술 당시 부회장(현 한국실명예방재단 명예회장)을 주축으로 ‘국민의 볼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뜻 있는 안과 전문의들이 눈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 및 치료를 위한 구심점으로 재단이 탄생했다.

재단은 진료팀을 구성해 지역을 찾아다니며 검진 및 수술비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사회취약계층인 맹학교, 고아원, 양로원, 복지시설 입소자 등 영세민과 농어촌 주민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졌다. 이렇게 소단위, 지역 중심으로 한 시범적 안 검진 및 개안수술사업에 대해 지자체와 취약계층에서 큰 호응이 일면서 전국적 사업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보건복지부, 대한안과학회(회원 3,000여 명), 지자체(252개 시군구 보건소) 등과 긴밀한 협력체계가 구축되어 그동안 무관심했던 눈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됐다.(2009년까지 9만 4,814명 무료 눈 검진, 2만 2,175안(1만 4,604명)의 개안 수술 사업을 진행했다.

◇취학 전 아동 실명예방사업 펼쳐 =
재단은 실명 질환 사전 예방을 위한 홍보사업에 역점을 뒀다.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교육, 세미나, 캠페인 등 예방보건사업을 추진했다.

안과 질환의 조기치료와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각종 강연과 눈 질환 계몽 팸플릿, 비디오, ‘실명예방’ 소식지 등을 통해 눈 보건교육 및 정보를 제공했다.

특히 구 박사는 취학 전 아동들에 대한 실명예방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만 3~6세 아동의 조기시력 검사는 안과적 이상의 조기발견 및 치료 뿐 아니라 약시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되도록 3~4세에 약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그 나이 때는 제대로 의사표현이 안될 뿐 아니라 부모도 관심이 적기 때문에 약시를 그냥 넘겨버리기 일쑤다.

1995년 서울 지역에서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해 왔던 조기시력검진사업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2000년부터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 규모로 확대 실시됐다. 또한 매년 60만 명의 자가 시력검진도구를 배표해 가정에서 아동들의 눈 건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해왔다. 

◇‘구본술 저시력 상담센터’ 개소 =
저시력이 국내에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시장성과 효율성이 없다고 판단돼 등한시되던 때가 있었다. 이에 2005년 ‘구본술 저시력 상담센터’(한국실명예방재단 부설)가 문을 열었다.

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저시력 재활 시기능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실시했다. 센터는 안과전문의, 간호사, 안경사,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등으로 구성돼 의료상담, 저시력 기구보급 및 대여, 적응훈련, 홍보 캠페인 등을 실시하고 있다.
 
2007년에는 ‘시기능 훈련교실’을 개소해서 저시력 아동들에게 시기능 훈련과 보조기구 사용 등 시각재활훈련을 실시했다. 이는 남아있는 잔존 시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시기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국제교류로 국내 안 보건 분야 위상 드높여=
재단은 2003년 세계보건기구, IAPB(국제실명예방기구), 대한안과학회 등과 함께 전 세계의 실명을 퇴치하자는 ‘VISION2020' 운동 조인식을 가졌다.

재단은 안과 및 보건 분야에 있어 국제적 경쟁력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 국제회의에 매해 참가했다. 구 박사는 IAPB 국제 시각장애 예방기구 가입을 추진했고, 1982년 국제 안 병리학회 부회장, 제1회 한일 안과학회장, 1984년 세계보건기구 실명예방분야 자문관을 역임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회원단체를 대상으로 국내 및 재단의 안 보건사업을 소개하고 국제교류의 매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내 안 보건 분야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4년 북한에 안과 의약품 지원을 통해 평양 라이온스 안과병원 개원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2005년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동남아 지역에 의약품 지원, 봉사활동 등 다각적으로 해외 실명예방사업을 전개했다. 2008년에는 라오스의 사바나켓에서 안과 치료, 개안 수술, 보건교육을 겸한 실명예방활동을 진행했다.

현재 구 박사는 비전케어서비스 상임고문으로 파키스탄, 캄보디아, 몽골, 중국 등 해외 저개발국 진료 사업을 추진해 3만여 명의 환자들에게 진료 혜택과 4,000여 명 이상에 개안 수술을 진행했다.
▲ 구본술 한국실명예방재단 명예회장은 구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1~2일은 재단에 나와 일을 보고 있다.

 


◇안 보건 분야 헌신 돋보여 = 구 박사는 가톨릭의대 안과 교수 재임 시절, 국내 최초로 가톨릭의대에 ‘중앙 안 은행’을 설립했다. 지금은 각 대학병원에 ‘아이(eye)은행’이 있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국제 안 재단’의 협력으로 설립돼 기술과 시설 등을 국내에 도입하고 각막이식의 장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평생을 안 보건 분야에 헌신해 온 구 박사의 업적과 경력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의 업적을 기려 대한안과학회는 구본술 박사의 이름을 딴 의학상을 제정했다. 2010년에는
제22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그가 의료봉사상을 수상했다. 상금 5,000만원 전액을 안보건 연구기금으로 재단에 기부했다. 2012년에는 인도에서 열린 국제실명예방기구 제9회 총회에서 구 박사는 ‘Eye Health Hero’에 선정됐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맑은 얼굴에 편안한 인상을 유지했고, 오래 전 과거를 떠올릴 때는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또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중했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는 평생을 거쳐 몸에 익혀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따금씩 마주친 검은 눈동자에는 아직 정기가 서려 있었다. 심혈을 기울이는 천직에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듯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