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지 않는 물가... 높아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내려오지 않는 물가... 높아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2.06.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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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러 원유 수입금지 의결...곡물 수출 막는 국가도
인플레이션, 경기둔화 시차 두고 나나탈 수도...
남대문시장의 한 식자재가게. (사진=황예찬 기자)
남대문시장 야채 가게. 지난해보다 20% 정도 오른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사진=황예찬 기자)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감자가 제철인데 1kg에 5000원이면 비싼 거예요. 오이도 비싸고, 삼겹살은 거의 두 배 오른 것 같아요.” 용산구의 한 대형할인점에서 장을 보던 주부 A씨는 최근 가격이 안 오른 품목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남대문 시장에서 식자재를 팔고 있는 B씨는 “작년 이맘때보다 못해도 20%씩은 가격이 오른 것 같다”며 “찾아오는 사람마다 오른 가격에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한편 주유소를 들르는 직장인들의 한숨 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서울 시내에서 L(리터)당 2000원 이하의 기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직장인들이 몰리는 여의도나 용산 부근에서는 2300원, 2400원을 내건 주유소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기도 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13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L당 2073.40원으로 근소하지만 휘발유 가격 2073원을 넘어섰다.

◆ 소비자물가 상승률 5%대 진입... 정점은 언제?

연초부터 심상치 않던 물가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5월보다 5.4% 올랐다. 같은 기간 생활물가지수는 6.7% 올랐고, 신선식품지수는 2.5% 올랐다.

주로 농축수산물의 오름세가 확대되면서 석유류와 가공식품 등 공업제품,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이 올랐다는 분석이다. 특히 축산물 가격의 상승폭은 지난해 같은 달 7.1%였지만 1년 만에 12.1%로 확대됐다.

또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부분 금수 조치를 추진하는 등 국제 유가 상승 압력이 계속되면서 석유류 가격 오름세(34.8%)도 이어졌다.

우리나라 경제와 밀접한 미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6% 상승하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료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9% 올랐고 에너지 가격은 34.6% 올랐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분기 혹은 2분기 초를 기점으로 물가가 정점 통과할 것이라는 소위 ‘물가 정점론’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물가상승의 뒤편에는 곡물 수출 제한 정책을 강화한 국가들이 있다. 지난 11일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WASDE(전 세계 농산물 수급전망 보고서) 따르면 인도는 지난 5월 13일부터 연말까지 밀 수출을 금지하기 시작했고, 이달 1일부터는 연간 원당(설탕) 수출량을 1000만톤으로 제한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부터 팜유 수출을 규제했다가 지난달 해제했지만 팜유 생산업체가 일정 물량을 자국 시장에 우선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전문가들은 곡물 중에서도 소맥과 옥수수가 특히 부족해질 것으로 본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도의 수출 제한 정책으로 전 세계 소맥 기말 재고 전망치는 지난해보다 4.49%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6년 내 최저치다”고 전했다.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을 넘어선 모습. (사진=황예찬 기자)

또한 지난달 30일 EU 27개 회원국이 의결한 러시아 원유 수입금지 조치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슈는 가격에 선반영된 부분도 있지만 6차 러시아 제재안 내 추가적인 제재가 포함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고, 이번 EU의 조치에 따른 러시아 측의 추가 대응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국제유가 추가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물가상승의 정점은 언제쯤 찾아올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놨다. 이 총재는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수개월, 7월까지는 물가상승률이 5%가 넘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 추세를 보면 피크가 올해 상반기에 있기보다는 중반기 넘어서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유가가 내려가더라도 곡물 가격이 올라가는 현재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총재는 “곡물 가격은 한번 올라가면 가격이 오래간다. 경작하고 공급이 새로 늘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며 “곡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식료품 관련 여러 품목의 물가상승이 지속돼 내년 초까지도 3~4%의 물가상승률이 유지된다고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 스태그플레이션 막으려면 물가 안정 집중해야

한편 일각에서는 높은 물가상승률과 경제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며 경제 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높은 물가는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1.5%에서 1.75%로 인상했다. 지난 11년 동안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았던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 회의에서 전망 시계 전체(2022~2024년)에 걸쳐 소비자물가 전망을 일제히 2%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7월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특히 예상보다 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마주한 미국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이번 주 FOMC 회의를 열고 16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5월 물가 쇼크 탓에 ‘자이언트 스텝’, 즉 75bp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경제 저성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표면적으로는 높아진 물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인데, 사실 이와 같은 정책 방향성은 높은 물가와 낮은 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가능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요 기관의 전망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7일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발표했다. 이는 올해 1월 전망 때보다 1.2%p 내려간 수치다.

반면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선임연구위원은 대내외 불확실성과 정책 당국의 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국내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장 연구위원은 “물가상승률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점차 오름세가 완화되겠지만 현재 잠재수준을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는 실물경제는 갈수록 둔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둔화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경기둔화 가능성을 우려해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증대시킬 것”이라며 “경기와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해 물가안정 기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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