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빛나라의 LAW칼럼] 아름다운 이혼하기
[오빛나라의 LAW칼럼] 아름다운 이혼하기
  • 송지나 기자
  • 승인 2021.07.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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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오빛나라
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오빛나라

미국 토마스 홈즈와 리차드 라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와의 이혼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스트레스가 높은 사건이다.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가족이 사망하거나 부상이나 질병을 경험하거나 결혼, 실직, 은퇴와 같은 사유보다도 더 높은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꼽혔다. 이혼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은 배우자와의 사별이 유일했다. 이를 보면 부부가 헤어지는 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배우자에 대한 분노, 실망, 슬픔이 계속해서 쌓이고 쌓여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하게 되지만, 스트레스는 이혼을 결심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마주해야 한다.

‘아름다운 이혼’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끔찍한 고통을 가져오는 이혼이 아름답다니, ‘아름다운 이혼’이란 표현은 용어 그대로 조화될 수 없는 모순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재판상 이혼에서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민법은 부부 중 일방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로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②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③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④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⑤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⑥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재판상 이혼에 대한 유책주의를 채택한 것으로서 혼인관계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

이혼에서 ‘유책주의’를 택하느냐, ‘파탄주의’를 택하느냐는 가족법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으나,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을 뿐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이혼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 ①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②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③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했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는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더라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태양·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 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한다.

하지만 유책주의하에서 예외적인 사유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만큼 상대방이 이혼을 거부할 경우 이혼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밝혀야만 한다. 재산분할, 위자료, 친권자, 양육권자 선정에서 유리한 결정을 받기 위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빠짐없이 비난하며 감정을 소모하게 된다.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부부는 서로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부각시키며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이혼 소송이 진행될수록 갈등과 고통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가정법원 법관의 인터뷰에서 예를 든 사례가 인상적이어서 소개하면, 이혼 소송에서 의처증을 설명한다고 치면 단순히 의처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오면 아내의 옷을 다 벗기고 냄새를 맡는다’는 식으로 얼마나 심한 의처증인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100쪽 분량의 소장을 제출하며 상세하게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이를 읽고 난 배우자는 120장을 써서 반박하는데 나중에는 진실이 사라지고 서로를 공격하며 추악한 폭로전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혼 소송 중인 아내의 차를 들이받아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별거 뒤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료이미지 (출처=픽사베이)
자료이미지 (출처=픽사베이)

가정법원에서는 이혼 소송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해결하려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혼 소송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싸움인 것이 현실이다.

이혼 소송 중에 생긴 감정의 골이 커지면 결국 적대적 이혼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혼 책임에 대해서 소모적인 논쟁을 하며 과거의 갈등에 강박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충실한 계획과 논의는 놓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혼전문가는 협력적 이혼을 권장한다. 이혼 전 분노, 슬픔, 실망 등 부정적인 감정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이혼 후에도 자녀의 주 거주지, 비거주 부모의 방문일정, 상급학교 진학, 자녀의 결혼 등 양육 사안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는 것이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콘스탄스 아론 박사는 ‘좋은 이혼(The Good Divor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혼 그 자체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혼하는 과정이 좋으면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 아이들이 무조건 정서적으로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지적한다.

좋은 이혼이란 자녀의 가족 유대관계를 파괴하지 않는 것으로 부모가 아이들을 갈등에 관여시키지 않고 아이들의 삶에 계속 참여하고 부모로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정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이혼을 하게 되면 가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두 가구에 걸쳐 있는 형태로 유지되면서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기 때문에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아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보면 결별한 후에도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휴가를 가며 친구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혹자는 비즈니스 관계라서 그렇다고 의심하고, 혹자는 개방적인 미국의 문화와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문화는 달라서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이라고 해서 이혼으로 인해 분노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앞서 ‘좋은 이혼’의 개념을 만든 콘스탄스 아론 박사는 미국의 주들이 현재와 달리 대부분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던 1960년대에 이혼을 경험했고, 변호사의 지도를 받아 사소한 일을 과장하고 판사에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았다고 하면서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서로에게 분노하며 비방하는 적대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분노를 억제하고 자녀의 필요를 우선하며 협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혼 그 자체는 아름다울 수 없다. 사랑하던 부부가 헤어짐을 선택하기까지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큰 고통과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혼을 해야만 한다면 이혼 과정은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그것이 이혼을 선택한 부부와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이혼’이 가능해져야 한다.

 

<오빛나라 변호사 약력>
-現 오빛나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現 대한변협 인증 산재 전문 변호사
-現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자문위원
-現 한국여성변호사회 재무이사
-現 서울지방변호사회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
-現 서울글로벌센터 자문위원
-現 수협 공제분쟁심의위원회 위원
-前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
-사법시험 54회 합격
-사법연수원 44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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