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마사회 김우남 회장 사태, 나무보다는 숲을 볼 때
[취재수첩] 마사회 김우남 회장 사태, 나무보다는 숲을 볼 때
  • 황예찬 기자
  • 승인 2021.06.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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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한국마사회장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김우남 한국마사회장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베이비타임즈=황예찬 기자] 한국마사회가 상반기 내내 홍역을 앓고 있다. 올해 새롭게 취임한 김우남 마사회장이 취임과 동시에 부정 채용 강요와 폭언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김 회장이 취임한 지 사흘 만인 지난 3월 6일이다. 마사회 간부였던 피해 직원이 김 회장과의 대화 중 휴대용 녹음 장비를 사용했고, 녹취 파일에는 폭언하는 김 회장의 육성이 그대로 담겼다.

김 회장은 폭언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마사회 노조 일부는 애초에 김 회장이 부정 채용을 강요했다며 자진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지난달에는 급기야 김 회장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사건이 커지자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 감찰을 지시했고, 지난달 7일 민정수석실은 김 회장의 욕설과 폭언을 인정하며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규정에 따라 조치하도록 지시했다. 현재 김 회장은 농식품부의 감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 드러난 사건이 다는 아니다

김우남 회장이 간부에게 폭언 내지는 욕설을 한 행동 자체는 명백한 사실이다. 말 산업이라는 중요한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기업 회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김 회장 개인의 일탈, 혹은 ‘인성 문제’로만 지적받을 일일까?

김 회장이 회장으로서 처음 출근했을 때부터 마사회 내부에서는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낙하산 인사’라는 프레임으로 출근 거부 운동을 벌이거나 업무 방해를 하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도 보였다.

마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내부 기득권의 세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김 회장이 전임 회장들과는 다르게 마사회 경영 혁신을 들고 나오자 이미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던 세력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사회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한 간부는 김 회장에 대해 “지금까지 열 네 분의 회장을 모셔봤지만, 여태껏 이런 회장은 없었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이 처음 취임할 때부터 쇄신과 혁신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회장은 취임과 함께 온라인 마권 발매 부활에 박차를 가하고, 이후에는 세제 개편을 통한 산업 활성화 방안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간부는 “솔직히 전임 회장 중에는 마사회 운영이나 말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분들도 더러 있었는데, 김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들보다 마사회법을 더 세세히 알고 있어, 간부들에게 질문한 뒤 대답하지 못하면 나무라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다루기 힘든’ 회장이 등장한 셈이다. 이번 사태가 조직적으로 계획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에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폭언을 녹취한 간부 외에 다른 간부 한 명도 김 회장의 대화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폭언이 있기 전 부정 채용을 강요했다고 할 만한 상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김 회장은 특별 채용과 관련해 농식품부와 협의하기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담당자가 제대로 협의를 진행하지 않자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욕설과 폭언에 초점을 뒀을 뿐, 김 회장의 특별 채용 검토 지시에 대해 ‘부정 채용’이라는 언급을 덧붙이지 않은 만큼 이번 사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다. 김 회장이 내부 인사와 헤게모니 싸움의 희생양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천 렛츠런파크 입구에 온라인 마권 발매를 (사진=베이비타임즈)
과천 렛츠런파크 진입로에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베이비타임즈)

◆ 정말 물러나야 할 일인가? “말 산업부터 살려야”

지난 12일 한국마사회한우리노동조합,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서울지부·제주지부,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노조 등 마사회 관련 4개 노조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김 회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관련 4개 노조는 “(당사자가)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해 사건을 키우고 여론몰이하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온라인 마권 발매 시스템’ 도입을 이뤄내겠다”고도 전했다.

사실 최근 마사회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급휴직도 진행했고, 렛츠런파크도 아직 무관중으로 운영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유보금으로 간신히 버텼지만, 그마저도 상반기가 지나면 곧 바닥날 상황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7월 중에 거리두기 개편안이 적용되면 관중을 30%까지 받아서 시행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언제 개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장이 리스크에 시달리는 것은 큰 타격이다.

이 관계자는 또 “온라인 마권 발매 법안도 다시 법안소위에 올릴 예정이어서 기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의원 시절부터 추진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은 김 회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온라인 마권 발매 추진은 다시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경마 산업은 결코 마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주와 기수, 조교사 등 경마뿐 아니라 관련 산업에 생계가 달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 회장의 ‘사퇴’는 꼭 필요한 일일까. 말 산업과 경마 산업을 이대로 무너뜨릴 게 아니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은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때다.

본 신문은 지난 6월 21일자 오피니언>취재수첩면에 위와 같은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보도에서 언급된 한국마사회 한우리노동조합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노조는 한국마사회 소속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 마사회 소속 4개 노동조합에서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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