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춘호 농심 회장, 대한민국 희로애락 함께한 ‘라면’ 거인
故 신춘호 농심 회장, 대한민국 희로애락 함께한 ‘라면’ 거인
  • 최주연 기자
  • 승인 2021.03.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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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춘호 농심 회장
故 신춘호 농심 회장

[베이비타임즈=최주연 기자] 한국의 매운맛으로 세계를 울린 라면 거인 농심 신춘호 회장이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춘호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의 역작, 신라면은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일본 롯데에서 이사로 활동하던 신춘호 회장은 1965년 귀국해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설립했다.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런 그의 라면 사업을 반대했다. 라면 사업을 하려거든 롯데 사명을 쓰지 말라는 신 명예회장의 고집에 결국 1978년 '농부의 마음'이라는 농심으로 사명을 바꾸고 형제는 의절했다. 

1975년 개발한 농심라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드시오 농심라면'이라는 광고카피와 형님과 아우가 볏단을 나르는 훈훈한 소재로 알려진 제품이다. 소고기와 닭고기의 진한 육류 맛이 어울린 담백한 맛이 나고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스프의 은은한 맛이 더해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다. 

신춘호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했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또한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둬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을 개발했다. 당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내기 힘들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 작품에는 그의 천재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신라면은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춘호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대한민국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고 글로벌 소비자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면서 세계시장도 석권했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 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는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The best instant noodles로 신라면 블랙을 뽑은 뉴욕타임즈 와이어커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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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은 지난 27일 영면에 들기 전 “품질제일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50여년 동안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짚으면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마지막 업무지시를 내린 것이다.

신 회장의 라면은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던 음식에서 이제는 개인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국민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한 농심은 신춘호 회장의 바람대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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